제  목 : 

성모님은 부모님께 무엇을 배우셨을까?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7-26 00:37:3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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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았다>

2018.7.26

 

제1독서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 예레미야서  2,1-3.7-8.12-13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  13,10-17

 


 

성모님은 부모님께 무엇을 배우셨을까?

 

제가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다가

먼저 오늘 기념이신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의 이름에 눈이 갔습니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두 분은 왜 시성되셨을까?

어떻게 시성되었는지는 오늘 매일미사에 나와 있지만

그런데도 왜 시성되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가톨릭에서 시성되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이분들 이야기는 예수님의 양아버지 요셉 성인보다도 안 나옵니다.

이름 자체가 안 나오시거든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분들을 공경하게 되었고 시성하게 되었을까요?

성모님의 모습이 이 분들이 시성되기에 합당하다고 교회가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어속담에 '한 명의 좋은 어머니는 백 명의 학교 선생님만큼 가치 있다'

(one good mother is worth a hundred schoolmasters.)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율법이나 이스라엘 민족들의 삶,

사실 고대 민족들의 삶을 보면 요즘 중요시 여겨지는

“간접경험”의 횟수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행을 가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문학작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많았다 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 교육이라 하면 특히나 성모님과 같은 여자로서는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가정에서는 하느님의 업적을 대대로 교육할 것을 지시받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지녔던 자세는 이 분들에게 배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성경을 통틀었을 때 성모님의 대표적인 자세는 무엇일까요?

많은 의견들이 있겠지만 저는 이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하였다.'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습니다.

어떤 것은 무관심하게 지나가고 어떤 일은 좋아하고 감동합니다.

어떤 일은 싫어하고 상처 받습니다.

감동과 상처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감동이든 상처든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투영시킨다면

그것 자체로 나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것을 삶에 투영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은 곰곰이 되새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동을 이야기하자면

돈과 업적으로 인해 내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당연시되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이 시대에

봉사활동을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단지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고마워할 때 얻은 감동,

그것을 곰곰이 되새기며

그저 내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자세를 삶에 투영시키면 그 사람은 변합니다.

반대로 상처를 이야기하자면

자신에게 상처를 준 행동을 원망하면서 '나는 저러지 않을 것이다' 하고서

자신의 삶에 투영시키면 그 사람은 그렇게 변합니다.

 

사람은 감동을 좋아합니다.

감동을 통해서 자신이 변하고 많은 것을 배운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감동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또한 사람은 상처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주는 상처는 되돌아보지 못합니다.

감동을 찾아 여기저기 봉사를 다니고 책을 많이 읽어도 소용없는 사람이 있고,

또 상처를 피해 다니고 싫어하지만 소용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나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으시지만 그렇게 하신 이유는

곰곰이 되새기며 생각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곰곰이 되새기며 생각하는 자세를 지닌 이들은

받은 감동과 받은 상처에서 은총을 더 받아 넉넉해집니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곰곰이 되새기며 생각하는 자세가 없다면 무엇을 빼앗길까요?

무엇을 보았어도 그저 물체였을 뿐이고,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저 소리였을 뿐,

마음이 감동을 느껴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상처를 받았어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험과 간접경험들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많은 체험을 하고 많은 책을 읽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경험을 가지기 전에

그 모든 경험들을 되새기는 법을 배우고

삶으로 투영시키는 방법을 익히고 가르쳐야합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이 내게 지나갔다하더라도

그저 지나가는 경험이라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을 내 삶에 투영시키고 되새겨야 그 경험들이 쓸모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를 기억하며

그들이 성모님께 가르친 '곰곰이 되새기며 마음에 새기는 방법'을 우리도 익히고

그들처럼 다른 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하겠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하느님의 뜻을 듣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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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8/07/26 16: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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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오늘 복음 묵상 감사합니다, 주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7/26 19: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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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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