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올바른 규정은 집행자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냅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7-20 07:46:0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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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2018.7.20

 

제1독서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 이사야서   38,1-6.21-22.7-8

복음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마태오   12,1-8

 


 

올바른 규정은 집행자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청소 해라 그렇게만 시켜놓고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다왔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 하면 30분이면 끝날 일을 1시간 반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비슷했습니다.

종종 잘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거의 비슷했죠.

그래서 한 번은 그 학생들이 청소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학생들은 평소에 청소를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걸 했다가 저걸 했다가 하면서

'어 내가 이거 했었나?' 하면서 한 것을 또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청소시간은 길어지고 지쳐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청소를 시작할 때 청소를 순서를 정해서 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 능률이 크게 오르더군요.

이렇게 정말 사소하지만 청소 순서라는 규정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실 계획이나 규정은 공동체에서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그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필요합니다.

제가 청소 순서를 정했더니 학생들이 헤매지 않고

금방 청소를 끝내고 잘하게 된 것과 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규정은 그 사람은 필요한 방향으로 이끕니다.

보통 제시된 공동체의 규정은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즉 규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잃고서 떠돌아다니게 되는 규정들도 생깁니다.

이것은 드러난 규정의 의미에 대한 망각에서 오게 됩니다.

규정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탓에

그저 억압하는 규정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비유로 말씀드린것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은 학생들이 헛되이 돌아다니다가 지쳐가는 모습과 같이

그런 규정은 스스로 힘을 잃어가고 공동체 전체를 지치게 만듭니다.

규정 자체에서 힘을 잃고 그 규정을 집행하는 집행자의 힘에 의존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사실상 이런 규정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소속된 공동체가 각기 다르기에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길을 잃은 규정들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규정들에 '왜?' 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 규정이 올바르게 제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못하는지 간단히 식별이 됩니다.

'왜' 라는 질문이 의미를 잃은 규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왜?' 라는 질문에 껍데기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런 모습의 가장 대표적인 대답은 '규정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라는 대답입니다.

사실 집행자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바리사이파들은 대부분 “율법서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를 무기로 사용합니다.

이걸 왜 해야 하나 그냥 까라면 까는 거지 이런 식으로 규정이 집행됩니다.

이렇게 된 규정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그저 의미를 잃은 채 여기저기 휘둘러지는 채찍일 뿐입니다.

조금 식별하기 힘들어지는 것이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경우엔 식별하기 힘들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가? 생각보다 의도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규정들이 많습니다.

 

둘째로 '왜?' 라는 질문에 지향점이 드러납니다.

그 규정이 집행되는 것이

공동체의 명예를 위한 것인지, 공동체원들을 위한 것인지 드러납니다.

사람이 모여서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몸이 아무리 멋있고 예쁘다 해도

몸의 세포 중 하나가 암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 암세포 하나 때문에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갑니다.

지향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공동체의 명예가 빛나도

그 내부의 공동체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면 그 악취는 베어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라는 질문에 규정의 부끄러움이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올바른 규정을 가지고 있고 그 규정의 기반도 올바름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규정에서 임의로 한 마디를 더해서, 또는 한 마디를 빼서 악습이 생겨납니다.

공동체 내에서는 당연하고 당당한 그 규정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세상에 밝혀집니다.

이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드러나게 됩니다.

임의로 더해지고 임의로 빠진 부분이 말이죠.

 

물론 규정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규정을 보조해줄 '왜?' 라는 질문도 필요합니다.

그 '왜?'는 언제나 규정이 의미를 잊지 않게 도와줍니다.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그 규정이 왜 지켜야하는 것입니까?

무엇을 위한 규정입니까?

정말 그 규정이 맞습니까?

규정은 희생제물이 아닌 자비를 위한 도구입니다.

선악과의 금지의 의미를 되새기십시오.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것을 주기 위한 모든 것 중 단 하나의 금지”의 의미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과 함께하는 규정은 모든 것을 주기 위한 금지입니까?

아니면 빼앗기 위한 금지입니까?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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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7/20 19: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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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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