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상징의 본질적인 의미를 자신의 영혼에 새기십시요.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7-17 01:07:3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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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화요일]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2018.7.17

 

제1독서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 이사야서   7,1-9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오   11,20-24

 


 

상징의 본질적인 의미를 자신의 영혼에 새기십시요.

 

저는 다양한 기도방법을 스스로 해보면서 연구를 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제가 누군가에게 기도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까지 남을 위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성당에서 기도한다고

앉아서 쉽고 편하게 하느님을 뵐 수 있을까?' 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저 아무 말이든 해보다가

잠심를 배웠다가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후에는

침묵기도를 배우고

긴 시간 앉아서 하는 관상기도를 배우고 연습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하느님을 뵙고 나니 기쁘긴 한데

하느님은 계시지만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내 스스로 하느님과 멀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기도를 앉아서 하지 않습니다.

일상기도라는 것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현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즉 무의식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기도해야할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기도를 앉아서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일상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앉아서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을 묵상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늘상 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저는 앉아서 하는 기도를 내려놓았습니다.

 

사실 제가 매일 쓰는 묵상 글도

성체조배를 오랫동안 앉아서 하면서

이번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줄까... 고민하면서 쓰는 건 아닙니다.

(뭐 묵상 글 쓰면서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묵상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떻게 읽기 편하게 해드릴까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만,)

지금 제가 요즘 하는 일상기도 방법은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미사의 내일 독서와 복음을 읽습니다.

(제가 내일 복음을  읽는 이유는 오늘저녁에 다음 날 묵상글을 쓰기때문입니다.)

한 3번 정도 읽습니다.

아침에는 그게 끝입니다.

그걸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고 깊게 묵상도 안합니다.

그냥 읽어 둡니다.

그리고 인생(생활)을 삽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다보면

소소하게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마음에 갑자기 드는 생각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인생(생활)을 살아가면서 곰곰이 되새겨봅니다.

가끔은 아침에 읽은 복음이 생각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최대한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게됩니다.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종종 주변에서 제가 혼자 중얼거린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보고 듣고 말하고 마음에 생긴 생각들을

컴퓨터 앞에서 복음과 함께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짜잔~ 이렇게 묵상 글이 나옵니다.

 

장황하게 제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도 한 번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까 싶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일상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의 현존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저 무의식적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서 감동을 하고,

또 내가 하느님의 현존을 깊게 체험함으로서 기쁨을 얻고

마귀들이 내 말을 듣고 구마 되었던지

치유의 은사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든

봉사와 선행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든 다 좋습니다.

옳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단 한 가지 문제점은

잘못하면 그것을 해야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이냐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저주가 그런 이들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적들이 일어난 고을들, 다 좋습니다.

기적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순간만 말이죠.

많은 신부님들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성당에서는 거의 성인과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성당 밖을 나서면 개판이 되는 신자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십니다.

제가 상징은 둘 째 쳐도

그 안의 본질적인 의미를 언제나 되새겨야한다고

성체에 관련되어서도 이야기하였고

제 스스로 성찰해보아도 다른 방향으로도 많이도 이야기했습니다.

상징과 본질은 마치 육체와 영혼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죽여도 영혼을 죽일 수 없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복음 말씀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금 이야기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옳지 않은 신앙생활도

본질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그저 보여지는 상징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앙생활입니다.

당장 보여진 것에 내가 느낀 감동, 기쁨의 이유는

보여지는 상징에서 오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 때문에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보여지는 상징에만 묶여 있는 것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보여지는 상징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교만입니다.

우리는 상징을 중시하기도 하지만

상징을 떠나서도 그 본질적 의미를 언제나 되새길 수 있어야합니다.

 

아하즈 임금을 보십시오.

그는 하느님께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합니다.

기적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를

삶에 투영하지 못하였기에 그는 악인이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어떤 이에게 조언을 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여러분 앞에서는 정말 긍정적으로 맞는 말이다 옳은 소리다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러분이 말해준 것을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면 어쩌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을 통해 본질적인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습니다.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는 것은 좋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로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습니다.

내가 하는 선행으로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정작 여러분의 인생에 투영시키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의 영혼에 초대하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에게는 그것들은 단순한 상징일 뿐입니다.

상징만 바라보고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체는 단순한 상징입니다” 하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신앙 생활을 통해 기쁨을 얻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듯이 느낍니다.

그걸로 하늘까지 오를 성 싶습니까?

저승까지 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내 영혼으로 받아들이고, 내 인생에 투영시키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 밖에서도 행하십시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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