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일꾼들이 많는데 사라졌습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7-10 07:57:2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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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이스라엘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2018.7.10

 

제1독서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 호세아  8,4-7.11-13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  9,32-38

 


 

일꾼들이 많는데 사라졌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들으며 한 설화가 생각났습니다.

게으른 농부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한 농부가 있었는데 이 농부는 너무나 게을렀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먹고 살려고 그 농부가 해야 하는 농사를 대신 짓고 있었죠.

그래도 농부는 게으르게 집에서 계속해서 자고만 있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의 아내가 참다못해 농부에게 나가서 일 좀 하라고 구박하며

농부를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은 일을 했죠.

그러나 농부는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까 궁리하며

가족들의 눈을 피해 일을 대충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일을 어떻게 하면 줄일까 하던 그의 고민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됩니다.

그는 곧바로 모내기 논으로 가서 심어놓은 모들을 빨리 자라라고 조금씩 뽑았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자 그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자랑하듯이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농사에 큰 보탬이 되어주었다고 말이죠.

그리고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황급히 논으로 뛰어갔습니다.

논에는 뿌리가 뽑히고 비에 휩쓸러 떠다니는 모로 가득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방법은 정해져있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나무뿌리가 땅으로부터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죠.

그러나 농부는 너무나 제멋대로 살았기에 최소한의 기본을 잊고 살았습니다.

제멋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한 결과 모든 것을 망치는 결과를 불러왔죠.

이 농부는 게으른 인간이라고 했지만

신앙의 입장에서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실행한 결과 무너지기도 하죠.

성실하건 게으르건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함으로서 무너집니다.

오늘 독서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우리 인간은 원죄로 인해 하느님과 갈라졌고

그렇기에 하느님과의 삶이 아닌 혼자 살아가는 삶,

하느님 빼고 우리끼리 살아가는 삶에 익숙합니다.

이는 아무리 하느님을 다시 뵈었어도 우리는 익숙한 것을 택하기 마련입니다.

한국인이라면 외국의 기름진 음식을 먹더라도

종종 김치와 같은 맵고 짠 음식을 곁들이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활 패턴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섞인다는 것입니다.

섞이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주인과 초대받은 손님이 왜 함께할 살 수 없겠습니까?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한 번은 사제의 한 말 때문에 교회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 사제는 자신의 지금까지 봐온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어떤 집이든 신발 상태를 보면

그 집안의 가정환경이 옳은지 틀렸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제가 어쩌다가 다른 집에

사제로서가 아닌 평가원으로서 가게 되었을까요?

우리 집에 온 손님이 평가원이라면 주인은 그 집의 주인이 아니게 됩니다.

주인은 손님의 눈치를 보는 손님의 종이 되죠.

그 사제의 이야기를 듣고서

'저 분은 평생을 언제 어디서나 주인으로서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주인으로서 살아간다면

하느님도 내 종이 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제가 병원에서 장기 봉사자로 간병인을 할 때

종종 학생 봉사자들이 반나절 정도 짧게 봉사하러 오곤 했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주로 시키는 일은 청소였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병원에서 봉사한다고 하면

환자들과 직접적으로 만나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청소라니요.

실제로 그런 불만이 있었으니 처음에 설명할 때 잘 이야기해 달라고 병원에서 부탁을 받았죠.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올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봉사한다고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고 구상하고 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봉사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 필요한 일을 돕는 것임을 기억해주십시오.”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 신앙생활을 하며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다고 하십니다.

수확을 부탁하셨는데 일꾼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입니다.

누구는 남의 땅에다가 씨를 뿌리고 있고,

누구는 가지치기 한다면서 나무를 죽여 놓습니다.

시킨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꾼은 많았습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문제이지만요.

그래서 없는 것입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갔습니다.

이것은 성당에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제 멋대로 열심히 살고서 난 열심히 살았는데

하느님은 무엇을 해주셨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제멋대로 행동하고서 이러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겠지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뿐이죠.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우리끼리 좋은게 좋은 거지 하며 하느님을 잊고 살진 않습니까?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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