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2019.8.2
제1독서 <너희는 주님의 축일들에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한다.>
▥ 레위기 23,1.4-11.15-16.27.34ㄴ-37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마태오 13,54-58
주님의 시간에는 삶을 내려놓아라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오늘 독서에서 보면 주님의 날에는 생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안식일도 그렇고 하느님께서는 종종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잠시 멈추도록 하십니다.
단순히 휴식을 위해서는 아닙니다.
인간의 일을 멈추게 할 때는 하느님과의 시간을 보내게 될 때 일을 멈추게 만드십니다.
즉 우리가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있다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이 있다면
동시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모임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노동의 삶이 있습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때 나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우리가 일주일에 하루 쉬는 안식일로서
휴식의 시간으로 여기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합니다.
저 두 시간이 명확하게 나누어졌다는 것은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분의 이유가 우리가 일하고 더 일하기 위한 쉬는 시간으로
나뉜 것이 아닌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주님과의 관계를 위한 시간과 나의 삶을 살아가는 시간 중
나의 삶을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위한 시간이 나의 삶을 보조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중심으로 잡아야할 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위한 시간입니다.
단순히 삶을 위한 휴식의 시간이라면
미사를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것이 더 좋은 판단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삶의 첫째는 하느님께 보낸다는 것을 독서에서의 규정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서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너희 수확의 맏물인 곡식 단을 사제에게 가져와야 한다.
인간의 삶과 하느님의 섭리를 구분해야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인 모습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복음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인간의 삶을 기준에 두고서 판단합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일 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그것이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 안에 하느님의 섭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하찮고 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께서 저 사람을 통해 나에게 무언가를 하던,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는데
하느님의 활동을 전면 부정해버립니다.
기준이 나의 판단에 있기 때문이죠.
하느님과의 활동은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부정해버립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활동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두 시간을 명확하게 나누고
무엇가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어야합니다.
보이는 것을 집중하여 내재되어 있는 하느님을 잊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하느님을 바라보고서 그 하느님을 통해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기준에 하느님이 묻히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충만하게 활동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시간에 하느님의 시간이 가장 처음이요 마지막에 자리하시어
그 길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바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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