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는 신학을 할 필요가 없다?

바울라님 2019-08-07 21:23 ...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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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타 기념일]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2019.7.29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  4,7-16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  11,19-27

 


 

평신도는 신학을 할 필요가 없다?

 

가톨릭은 초기 교회부터 2천년동안 수많은 이단들과 마주해왔습니다.

이는 교회만이 아닌 하느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은

구약 시대에서도 다가온 왜곡의 위험들과 계속해서 마주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위협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구약에서는 예언자들이, 교회에서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의 기둥으로 서있는 교의들은 오류 없이 하느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물론 성경을 공개하지 않았던 탓이 있겠지만 생긴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

평신도는 신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평신도들도 신학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합니다.

 

물론 하느님과의 교류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성적인 활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가톨릭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또 그냥 단순히 분열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못하고

동조하기도 하며 조금만 자신을 흔드는 이야기를 하면

이를 자신의 신학과 영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아닌 귀를 틀어막고서 고립됩니다.

가톨릭은 정당한 복음을 지니고 있기에

당당하게 들어오는 질문들에 대해 마땅히 대답하며 2천년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의문들과 질문들에 대해 대답 못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기에 복음에 반대하고

그 반대에 동조하고 혹은 귀를 막아 고립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독서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알맞은 사랑이 무엇일까요?

여기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하느님 그 자체를 사랑하며 그 사랑을 통해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만난 사랑만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의 수많은 가르침과 윤리적으로

'이건 하고 이건 하지 말아라' 하는 것들은 이 사랑에서 전제 되서 나옵니다.

물론 사제 개인 성직자 10명 정도 모여서 이게 맞다 이야기한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의 회의를 걸쳐 교황님을 통해 공표된 것은

수많은 교회 구성원들의 교류를 통한 이야기이며

한 두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계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른

성령의 이끄심이 있으셨기에 이를 오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조차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오류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죠.

그렇게 선포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나태를 평신도는 신학을 할 필요가 없다고 포장하여

교류를 통해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을 배척합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하느님은 교류를 통해 만날 수 있다고 증언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예수님의 대화를 살펴봅시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바로 잡았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안에서 신앙을 하며 많은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가톨릭 안에 왔으면 가톨릭의 가르침과 나의 생각이 부딪혀봐야죠.

그냥 모여서 하하호호 친교 나누면 그것이 가톨릭인가요?

그렇다면 미사는 왜하고 칠성사는 왜합니까?

구원을 위해서 입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까?

이를 통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구원은 하느님 주관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은 모든 이를 구원하신다는 것인데

하느님의 주관으로 구원 안하려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까?

이 정도 이야기만 해도 무너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압니다.

여러분도 그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믿었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 타이틀에 가톨릭 신자라는 명예직을 받으려고 성당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을 빛으로 여기십니까?

그러면 빛과 마주하십시오.

등잔을 위에 걸어두어 빛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가톨릭 신자이지

찬장 안에 두고서 빛이라는 이름만 두르는 것이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따라야하는지 스스로 성찰해봐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하느님과 마주하며 살아가십시오.

교리와 마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도 잘못된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눈 먼 인도자가 되지 말고 빛을 내 영혼에 새겨 살아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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