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천막은 어디인가?

바울라님 2019-07-22 15:41 ...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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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

<주님, 당신의 천막에 누가 머물리이까?>

2019.7.21

 

제1독서 <나리,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 창세기  18,1-10ㄴ

 

제2독서 <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이제는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 콜로새서  1,24-28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  10,38-42

 


 

주님의 천막은 어디인가?

 

주님, 당신의 천막에 누가 머물리이까?

 

주님의 천막에 누가 살까? 

우리는 주님께 의탁하는 희망을 자주 이야기하곤 합니다.

주님의 나라에 들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또 주님의 천막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며,

또 하느님 나라에 들도록 노력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천막은 어디일까요?

어디로 향하면 주님의 천막으로 갈 수 있는 걸까요?

일단은 가는 법은 오늘 복음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마리아의 태도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 하느님 말씀을 듣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다보면 마리아처럼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증진시킬 때도 있고

한편으로 마르타와 같이 성당에 5분, 성당이 아니더라도

서서 기도할 시간 5분도 내기 힘든 그런 때가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바쁘거나 정말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도 있죠.

우리는 어떤 때이든 마리아의 몫을 유지하며 살아가야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주님 안에서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마리아의 자리든, 마르타의 자리든, 어떤 자리에 있든지 주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합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걸로 우리는 주님의 천막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중심 주제는 이게 아니었죠?

주님의 천막은 어디일까요?

이 주님의 천막이 어디인가는 참으로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신비죠.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이 신비는 이스라엘 성도들 가운데 드러난 신비도 아닌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나타났습니다.

선별된 무언가에 드러난 것이 아닌 우리가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이들에게서 드러납니다.

참으로 자연스럽게 있던 것입니다.

펠라지우스 이단처럼 무언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무언가가 아닌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 가운데 자연스럽게 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풍성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 자체로 풍성하지만

그것이 그저 주어졌다는 것에서도 풍성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늘 상 듣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더 자세한 이해를 위해 제 1독서도 생각해봅시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은 세 사람에게 자신이 종인 것처럼 천막으로 그들을 모십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천막은 세 사람의 천막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천막은 그대로입니다.

세 사람을 모심으로서 아브라함의 천막이 그 자체로 세 사람의 천막이 됩니다.

처음의 질문이 주님의 천막은 어디일까 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물어보죠.

주님의 천막은 어디입니까?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린 여러분이 주님의 천막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저 멀리 있는 죽음 뒤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기에 죽음을 넘어서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선별된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이 주님의 천막에 드는 것이 아닌

여러분 개인 하나하나가 주님의 천막이며,

그 천막이 모여 하나로 이어진 것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영을 생각해보면 수많은 천막들이 하나로 움직인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천막이 있는 동시에 하나로서 움직였습니다.

각자의 고유성을 지니며 동시에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를 명확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각각 주님의 성전입니다.

이를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수많은 것이 함께합니다.

여러분과 반대된다고,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다고,

그것이 주님의 성전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마르타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마리아가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가 아닌가 그것만을 형제들과 나누어야합니다.

주님의 천막이 인간이라고 해서 우리는 유토피아적인 인간상을 선포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선포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신비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드러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어떤 공동체가 선한 것이기에 모여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인간상이 뛰어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천막이며,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지 선전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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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9/07/22 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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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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