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을 피함으로서 생기는 열매 '험담'

바울라님 2019-07-18 21:59 ... 조회(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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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2019.7.16

 

제1독서 <물에서 건져 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그는 자란 뒤,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

▥ 탈출기  2,1-15ㄴ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오  11,20-24

 


 

분열을 피함으로서 생기는 열매 '험담'

 

어제 분열을 회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분열을 회피하는 것은 마귀가 뿌린 가라지와 같이

세상을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각기 다른 모습들을 마주하지 않는 것이

분열을 피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분열을 피함으로서 생기는 첫 번째 모습은

안정화된 평화를 얻기 위해 겉으로 만들어진 관계들의 자리에 맹신합니다.

낮아 보이는 이들을 한 없이 낮게 보고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한 없이 높게 보는 태도가 생깁니다.

분열을 피함으로서 생기는 두 번째 모습은

관계를 마주하지 않는 험담이 늘어납니다.

교황님께서 바티칸에 근무 중인 군인들에게 명령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마귀가 바티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 중 첫 번째는 험담하는 이는 일단 바티칸에서 내쫓으라고 명령하셨다고 합니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험담을 밖에서 하고 들어오라고 말이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곤 하셨습니다.

분열을 회피함으로서 드러나는 모습 험담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봅시다.

 

첫 번째로 험담은 먼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 마주해야하는 사람에게서 험담이 나오게 됩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주해야하는 사람들이 험담함으로서

앉아서 경청할 수 있는 모습에서 돌을 들고서 마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기적을 일으키며 가르침을 드러낸 곳에서

예수님의 기적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린 이야기며

분열을 조장하는 말씀을 가르친다고 이야기가 나옴으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두 번째로 험담은 자신을 높입니다.

험담하는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처럼 악하지 않습니다.

이야기함으로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과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높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자신은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비어있습니다.

마주해서 받은 것이 없이 내가 겉보기에 느끼는 것들을 험담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높은 것 마냥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낮은 자가 됩니다.

그 기반에 쌓아둔 것 없는 모래성과 같기 때문이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세 번째로 두 번째에서 드러난 것 같습니다만 내면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게 됩니다.

사람의 원죄 이전에는 겉을 본다는 것으로 내면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보는 눈은 들보가 없었고

보이는 이는 가리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죄 이후에는 내면을 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경청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험담은 경청을 막고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듭니다.

겉모습은 맞더라도 내면에 왜곡을 가져와

그 사람이 아닌 것이 완성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종종 더 나아가 겉모습까지 왜곡하곤 하죠.

모세는 분명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은 그가 아무나 죽이는 사이코 살인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동족을 학대당하는 것에서 구하기 위해 마주한 것이죠.

그러나 험담은 이를 사이코 살인마라고 단정지어버립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는 모세는 사이코 살인마라는 소문이 완성되어 있었죠.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오늘 이런 분열을 피하는 것이 아닌 마주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파라오의 딸인 이집트의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상자를 보고 마주했습니다.

그 상자 안에서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또 그 아기와 마주했습니다.

어떤 사정으로 이 강에 떠밀려 내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이와 마주하며 그 아이가 죽어가는 물에서 건져냈습니다.

그 건져진 아기는 자라나 다시금 세상으로 마주하며 나아가게 됩니다.

죽음에 있던 이가 세상과 마주하게끔 한 것은

험담으로 분열이나 관계를 피하는 것이 아닌 직면하는 자세였습니다.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형제 여러분 무언가 불편함 불안 호기심이 생기면 다가가 직면하십시오.

험담을 통해 돌을 준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가가십시오.

여러분은 관계를 맺으려 다가가는 거지 그 형제를 이겨 먹을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제를 진리로 이끌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지

내 밑으로 이끌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나의 것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닌

듣고, 나의 것을 깎을 것은 깎고, 내어줄 것은 내어주는 대화의 태도로 다가가십시오.

듣는 이도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십시오.

그 이상 그 이하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마주하며 진리를 나누면

마귀는 하느님의 진리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험담으로 우리의 세력을 만든다면

그 세력을 통해 마귀는 하느님의 진리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의 관계가 하느님의 진리를 지킬지 배척할지는

우리가 직면하는지 험담하는지에 따라 달려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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