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주님의 뜻은 다수의 동의가 아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6-25 10:25:4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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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2019.6.19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코린토 2서  9,6ㄴ-11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  6,1-6.16-18

 


 

주님의 뜻은 다수의 동의가 아니다.

 

세상에 상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식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 같은 법칙입니다.

어떤 것을 바라볼 때 상식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이들에게는 상식도 없는 인간이라고 칭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이야기하는 상식적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나옵니다.

자기 공동체에서 다수의 동의로 나온 문화,

그 살아가고 있는 문화에서 상식이 나오게 됩니다.

그 문화에 살고 있는 이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에 상식이 맞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상식에 맞지 않았습니다.

상식을 넘지만 문화를 완성시키는 가르침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를 때 상식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상식을 내려놓는다는 것

한편으로 '다수의 동의'라는 것을 내려놓고서 살펴보아야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동체란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느님 대신 가장 먼저 만나는 우상,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는 우상은 공동체인 경우가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우상은 모든 것을 채워줍니다.

“상식”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한 목적은

공동체에 머물기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고 

상식이란 공동체의 다수가 동의한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는 이 상식이 선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시선이라고 표현하고서 이를 피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여기서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한다는 뜻은

단순히 그렇게 하여 부정한 사람이 되어서 은총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만족한 이가 다른 것을 볼까요?

상식을 잘 따르는 자신은 완성된 존재라 여기기에 은총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선, 기도, 단식입니다.

자선을 베푸는 것은 하느님을 통해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을 통해 받은 충만함을 인식하고 형제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맺는 것입니다.

단식은 관계 속에 서로의 것을 온전히 보기 위한 또한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수련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람들(세상)의 시선을 따를 때 의미가 없어집니다.

하느님께 가기 전에 공동체라는 우상에 걸려 넘어져 거기에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드러난 것에서 숨어계신 하느님을 찾아야하는

순례자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에 드러난 것에서 우리가 멈춰버리면 이는 어떤 모습이든 영적 퇴보의 모습입니다.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우리가 형제들을 이끌 때도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서가 아닌

하느님께서 그 형제에게 준 것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단순히 겉모습의 완성이 아닌

그 모습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여러분 몸을 바라볼 때도 여러분 자신의 보이지 않는 인격이 있다는 것을 알 듯이

상대의 모습 안에 있는 상대의 인격을 보아야하고

여러분의 인격과 하느님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듯이

상대의 인격과 하느님의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관계를 깨우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겉모습에서 더 나아가 내면의 울림을 볼 수 있게 노력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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