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왜 맹세를 하면 안될까?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6-17 12:20:2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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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0주간 토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2019.6.15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셨습니다.>

▥ 코린토 2서  5,14-21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마태오  5,33-37

 


 

왜 맹세를 하면 안될까?

 

가톨릭에서 맹세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세례 때, 견진 때, 서품이나 서원할 때 청빈 정결 순명 서약이 있고

그 외에는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이 맹세들은 하느님의 뜻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맹세로

교회 전승을 통해서 어렵게 내놓은 맹세입니다.

간단하게 맹세를 하게끔 두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하느님께 맹세하게 두지 않고 교회의 검증을 거쳐서 맹세를 하게끔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하느님께 맹세하는 것은 예수님도 그렇고 교회도 지양하게 하는 편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느님을 앞서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인간의 맹세라는 것은 어떠한 것을 그 상태로 고착화시켜버립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이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는

창조물을 특성에 따라 질서를 세우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서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것들은 각자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에 이름을 부르기도 하며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디지털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가공해서 그것의 질서나 의미와 가치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붙죠.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인간이

가서 이름을 붙이니 창조가 충만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충만한 인간으로서

질서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것이기에 더욱 충만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맹세란 것도 같은 작용을 합니다.

어떠한 것에 있어서 그 상태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고정시킬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룰 것인지 다짐하는 것이죠.

어떻게 다룰지 다짐하는 것은 참으로 조심해서 다루어야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역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완성시키시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맹세를 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완성시키시는 것을 앞서갑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한 맹세가 아닌 다른 맹세라면

우리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배척하기로 고착화시키는 맹세를 합니다.

우리의 맹세로 무언가는 선이 되고 무언가는 악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우리가 더욱더 비워야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고

하느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충만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원죄시절처럼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가르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속된 기준이 아닌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라보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수많은 해석을 통해 남겨놓은 것들은 하느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남겨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무언가 계획하고 다짐을 할 때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튼실히 하기 위한 목적이어야지

무언가 변화시키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발전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개인적인 맹세도 반드시 영적지도자와 나눔을 통해서 해야 하고

동정 같은 큰 서원은 교회를 통해 맹세해야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참으로 달콤하고 옳아 보이는 속임수를 가지고 와서 유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러나 이런 유혹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맹세를 했다 하더라도 여러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 보인다면

이는 끊어야할 맹세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세례 때에 죄를 끊어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설 것을 맹세했습니다.

청빈 서약은 세상의 재물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정결은 모든 것을 하느님을 통해 바라보겠다는 다짐이며

순명은 언제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것을 따르겠다는 서약입니다.

이 모든 맹세는 하느님과 화해를 향하고

화해로 다시 맺은 관계를 끊지 않으려는 맹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한 목적 외에 맹세는 필요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통해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여 하느님의 창조를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맹세를 돌아보십시오.

하느님을 위하지 않은 것, 하느님이 아닌 내 기준으로 맺은 맹세 모두 포기하십시오.

어떠한 맹세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앞서서는 안됨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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