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만약 교회가 무너질 때 무엇을 챙깁니까?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6-17 11:28:4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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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019.6.11

 

제1독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  10,7-13

 


 

만약 교회가 무너질 때 무엇을 챙깁니까?

 

안티오키아 교회는 열두 사도 중심적으로 이루어졌던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면 

참으로 뜬금없는 공동체였습니다.

사실 파견한 바 없이 갑자기 탄생한 교회가 안티오키아 교회였습니다.

어찌 보면 한국교회와 비슷했습니다.

바티칸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뜬금없이 탄생한 교회였습니다.

무언가 그리스도교는 제도화되어서 참 설계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하며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뜬금없는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테파노라는 한 지도자의 순교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그들 자체가 교회가 되어 교회를 선포한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 공동체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교회와 하나 되면서

교회가 성장해 간 것입니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실 바오로가 처음으로 마주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안티오키아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인사하러 가지 않고 바르나바의 인도에 따라 안티오키아에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안티오키아 교회를 보며 바오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한 번 더 박해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억압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자신이 죽인 스테파노의 여파가 이렇게 교회 공동체를 세우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있던 스테파노로 인한 사울의 원망을 넘어

스테파노를 죽인 바오로의 죄책감을 넘어서 이들은 일치를 이루었고,

바오로도 이들의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며

하느님의 사도로서 불리움을 받습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이런 것을 통해 보편 사제직에 대해 떠올리게 됩니다.

만약 내가 교회에서 불가피하게 떠나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교회의 힘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이 교회가 되어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 나를 떠나게 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용서하고

하느님의 사랑의 친교를 이룰 수 있을까?

교회의 제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성령의 힘으로 신비를 가시화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 있으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교회가 가장 중요시하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신자들 각각 개개인이 그 모든 것보다 중요시 여겼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금 현실에서 맺어가고 있습니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만약 성당에 불이 났을 때 신부님이 성당 안으로 뛰어가서 들고 오는 것이 무엇일까요?

보통 집이나 회사가 불타면 금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들고 나오려 한다면

성당이 불탈 때 들고 나오는 것은 감실 안에 있는 성체입니다.

초기 교회에는 수많은 이들이 재물을 바쳐서 공동으로 나누며 살아갔죠.

초기교회는 상당히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초기 교회가 박해를 받고 무너져 가고 있을 때

그들이 들고 나온 것은 그 재산이었을까요?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재산과 제도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신앙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앙으로부터 자란 것이기에 가장 뿌리인 신앙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단 하나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하나였습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도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하나로 살아갈 수 있어야합니다.

자신은 어떠한지 성찰해보십시오.

나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하나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나는 단순히 이 튼튼한 제도와 친분관계에 보호를 받으며

단순히 지금의 안정적인 자신의 모습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수많은 권위로 둘러 교만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나는 가진 게 없다 하여 주눅 들어 살아가지 않는지 성찰해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이 없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모든 것이 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욱 빛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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