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019.5.29
제1독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 사도행전 17,15.22─18,1
복음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요한 16,12-15
복음 선포는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에 대해 설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서 연구학자들이 바오로의 아테네 선교는 실패한 선교라고 이야기합니다.
아테네에는 정식으로 큰 공동체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패 속에서 살짝 지나쳐가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디오니시오” 이 사람은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가타” 라고 추정되는 인물로서
초기 교회의 교부입니다.
이 교부는 긍정신학 상징신학 부정신학의 개념을 확립합니다.
이 교부의 가르침은 훗날 가톨릭 영성의 큰 축을 담당한 인물 중 하나인
십자가의 성 요한의 기반이 됩니다.
참 신기합니다.
실패한 곳에서 작은 씨앗이 뿌려져 작은 줄기로 자라고
한편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열매가 큰 영성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향하는 길은 참으로 가까이에 또 멀리에 모든 곳에 있음이 보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최근 동료들과 현재의 교회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이 나왔습니다.
자신들의 것이 좋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듣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가 복음을 선포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나약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게 언제냐면 스스로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실제로 듣지 않는 이들, 배척하고 무시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또 복음이 추상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스스로 반박하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또 복음의 해결책이 추상적이고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 선포를 다시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복음 선포를 누가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이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른 해석을 할지언정
같은 복음을 선포하고 있던 것은 누가 들으라고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선포하라 하셨기 때문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복음을 듣는 이들의 귀를 여는 건
우리의 말솜씨나 우리의 위대한 완덕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선포도 하느님의 뜻이며 듣는 이의 귀를 여시는 것도 하느님입니다.
복음을 듣는 순간 귀가 열릴 때도 있지만 참으로 죽기 직전에 귀가 열릴 때도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하느님 아버지께 사명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시고서
들을 귀가 있는 이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들을 귀는 하느님의 사랑의 섭리에 따라 열릴 시기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포합니다.
우리는 들은 것만 선포합니다.
들은 복음을 선포하라 들었기에 선포할 따름입니다.
가톨릭교회는 2천년동안 이어온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복음을 늘 선포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며 모든 사람들을 종속하고자 하는 외침이 아닌
복음의 외침,
인간이 본래의 자유롭고 충만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초대를 끊임없이 외칠 뿐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가치를 폄하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 가치의 완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중에 스스로 이야기했던 이들이 있었을지언정
교회의 본질인 성령의 복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한 바가 없습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관계를 통해 언제나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이들을 복음의 삶에 초대하십시오.
그것은 누군가 들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외치라고 하시기에 외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귀를 열어주신 이들과 하느님을 통해 친교를 이룹니다.
예부터 교회가 도전을 받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도전 속에서 교회는 복음을 외쳤고
도전으로 온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복음의 샘물을 통해 채워서 돌아가곤 했습니다.
선포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며, 귀를 열어주시는 것도 하느님의 뜻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들의 삶의 자리에 맞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선포하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은
오히려 나를 본래 복음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듣게 한다고 상대 귀에 달콤한 말로 복음을 바꾸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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