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구속된 자리에 있습니다.

바울라 2019/05/30 22:23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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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화요일]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2019.5.28

 

제1독서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 사도행전  16,22-34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 요한  16,5-11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구속된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하면서 이러한 유혹을 자주 겪습니다.

하느님께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없애달라고 요구합니다.

또 나를 적대하는 이들을 없애달라고 요구합니다.

아니면 내 앞에 있는 십자가가 지나가게 해달라고

또 아무런 무리 없이 통과하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 것,

관계는 원하지만 내가 우위에 서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합니다.

저는 이를 유혹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유혹에 빠져 이런 걸 원하는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합당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선동과 날조로 대중심리로 체포되어 매질 당하고 수감되어 수인이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수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하지? 난 억울한데?

하느님께서 의인을 구해주신다 했으니 어떤 계기로 이런 모든 것을 다 깨주시겠지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난 나가서 복음을 선포해야해.’

그런데 바오로와 실라스는 이러한 유혹을 주님을 찬양함으로서 이겨냅니다.

지금 이 감옥에 수감된 것도 이들에게는 부르심입니다.

이 안에서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모습이 같은 유혹에 시달리는 다른 수인들의 마음까지 돌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이 풀립니다.

그러나 바오로와 실라스는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수인들은

수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한 영혼을 살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합니다.

간수는 사람의 뜻을 따라 바오로와 실라스를 가두어두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들을 데리고 나와 세례를 받고 그 둘을 모십니다.

간수가 본 그리스도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속되어 있든 아니든 자신이 부름 받은 자리를

하느님께서 부르신 자리로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갇혀서 끌려 다니던 수인들만을 보던 간수에게는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스스로 수인으로서의 모습을 받아들여

그 안의 의무를 다하는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조금 더 발전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유혹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 곁을 떠나면 안 된다.

수많은 욕망들을 비워낸 이들에게 마귀는 새로운 유혹을 줍니다.

영적 위로를 갈망하는 욕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깊은 관계를 위해서 영적 메마름을 주시어

당신과 깊은 관계로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는 우리 영적 위로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닌

그 존재 자체로 자유롭게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이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 모르고 또 알고자 하지도 않고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드로는 이 유혹에 빠져 예수님께 사탄이란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이 마음의 깊은 곳에는 하느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에 영혼을 둔 판단이 있습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온전하게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보여주십니다.

또 그 모든 것 안에서 선택 또한 자유롭게 맡기십니다.

세상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에 선은 완벽이며 악은 부족함 결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죄를 결핍이라 생각하며

의로움을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심판도 그저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갔는가 아닌가로 갈리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죄는 결핍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판단하여 그 결핍을 채워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의로움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움은 넘어지고 저 깊이 떨어지더라도

하느님을 끊임없이 향하며 하느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은 완벽한지 채점 받는 장이 아닙니다.

심판은 자신이 생각한 완벽을 향하는지 하느님을 향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완벽을 이야기하고 성령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향합니까?

나와 내 주변의 완벽한 상황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완벽이라는 욕망으로 유혹하는 마귀의 부름에 조심해야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임을 믿어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다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하는지 되돌아봅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비판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적 위로에 끌려 다니는 이가 아닌

그 창조하신 세상과 섭리를 받아들이며

하느님 자체와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이로 살아갑시다.

 

주님,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소서.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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