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2019.5.27
제1독서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 16,11-15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요한 15,26─16,4ㄱ
말씀하시는 성령 귀를 열어주시는 성령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는 상당히 부자 집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자색 옷감 자체가 귀족이나 왕족을 상징하는 옷감이었고 귀했기 때문에
이러한 물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상권 상으로 상당히 영향력 있고
부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 리디아나 그 당시 바오로가 선교하고 다녔을 교회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리디아가 세례를 받고서 바오로를 초청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종종 신부님께 식사 한 끼 같이 하자고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 당시 말씀 선포나 선교는 회당에서 이루어졌지만
성찬례 등의 중심적인 모임은 어떤 집안에 모여서 하곤 했습니다.
리디아의 초청은 자신의 집안을 온전히 바오로에게 내맡기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가 거기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가르침과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자리로 내어준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자신의 궁궐 같은 집안을 성당으로 교회에 봉헌한 것입니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리디아는 바오로를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본 것이 아닙니다.
짧게 본다면 세례 받은 당일에 처음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바오로가 지내던 며칠 안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선교 당시의 교회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초기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는데 예비신자 기간이 짧으면 3년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길면 10년 20년 넘어갈 수도 있었고요.
지금도 정식 예비신자 기간은 반년정도 걸립니다.
이러한 기간을 둔 이유는
그 사람이 교회의 교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리디아는 바오로의 선교를 듣고서 그러한 교의를 이해하고
마음으로부터 세례를 받아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왜 필요한지는 이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성령의 움직임으로서 작용합니다.
성령께서 말하는 이를 통해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듣는 이의 귀를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선포를 할 때나 들을 때나
이러한 성령의 작용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서 말하고 들어야합니다.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닌 성령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행해야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우리의 이야기가 상대가 듣지 않아
또 나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박해하기에 아파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을 기억해야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고
또 성령을 통해 듣는 과정 안에서 서로 반대하는 모습이 나올 수 있어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당장의 논쟁에서 그 사람에게 반대했지만
그 사람의 말이 내 영혼을 계속 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인들의 말들도 그 성인이 살아 있을 때는 박해 받았지만
그 성인이 하느님께 돌아간 후 성인의 말씀이 영혼을 울려 추대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성령을 통하여 이야기하십시오.
경청하여 상대를 최대한 받아들이며
상대의 입장에서 하느님을 향하도록 하는 성령의 이끄심을 이야기하십시오.
여러분이 성령의 말씀을 최선을 다해 선포하였으면
그의 귀를 여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의 때임을 믿고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아버지를 알게 되는 때가 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또한 선포하며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나에게 성령의 움직임이 있듯이 상대에게도 성령의 움직임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어떤 형제를 받아들이던지 변하지 않고 유지됩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상대의 이야기에 경청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우리는 모든 이의 무조건적인 동의로서 유지되는 세상의 뜻을 선포하는 이가 아닌
모든 이 안에서 보편적으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입니다.
내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상대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해도
하느님의 뜻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내 안에 있는 하느님 또 모든 이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
유형무형한 만물 안에서 창조하고 계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는
모든 것 안의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모든 것 안의 성령의 작용을 잊지 마십시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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