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 친교가 우선입니다.

바울라 2019/05/23 오후 11:21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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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목요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2019.5.23

 

제1독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사도행전  15,7-21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  15,9-11

 


 

인격적 친교가 우선입니다.

 

혼전순결을 지키는 이에게 참으로 커다란 유혹으로 다가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게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면 관계는 메말라 서로 갈라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 논리의 명백한 모순이 있습니다.

성관계를 하더라도 연인관계는 깨집니다.

오히려 성관계를 하고나면 더욱더 메말라 갑니다.

성관계를 한 이후에 자신의 욕망을 채웠기에 더욱 더 높은 쾌락을 원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이를 채워주지 못한다면 혹은 나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닌 짐이 된다면

그 관계는 깨버립니다.

성관계로 인해서 관계가 깨어진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확합니다.

인격적 친교가 없다면 그 관계는 메말라가며 서로 갈라지게 만듭니다.

또한 성관계는 그러한 인격적 친교를 대신하고 대표하는 무언가가 되어

인격적 친교가 아닌 성관계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인격적 친교 안에 성관계가 있는 것이지

성관계를 통해 인격적 친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혼전순결 또 연인관계를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신심활동, 유대인으로 치면 율법준수에 해당되는 것은

하느님과 나의 인격적 친교를 통해 나오는 것들입니다.

또한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교로 나오는 결과는 참으로 다릅니다.

연인의 사랑의 관계는 혼인성소를 받습니다.

지속적인 인격적 친교로 나온 부부의 모습들은

하느님 친교 안에서 드러났기에 비슷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모두 다릅니다.

똑같이 인격적 친교를 통해 사랑하고 계속 사랑하는 부부들이라도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친교는 모든 관계의 바탕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인격적 친교가 아닌 그로 인한 결과를 통해 바라본다면

인격적 친교는 사라지고 형식적인 관계 즉 공허한 관계만이 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율법 준수,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교로 나오는 이스라엘의 복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교가 아닌 율법 준수에 집중하자

인격적 친교는 사라지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가치가 되어버립니다.

내가 하던 신심을 강조하는 순간

형제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아닌 내 지도 아래 놓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기 시작한다면

바리사이의 제자가 될 뿐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율법준수에 있어서는 이방인들은 하위이며 바리사이가 상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향하는 이들은 위 아래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위인지 아래인지도 그리스도께 맡길 가치일 뿐입니다.

우리는 형제에게 오로지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 있는가만

식별하고 말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일명 예루살렘 공의회라 불리는 사도 공의회의 결정도

신심을 따르는 것이 아닌 그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정립할 수 있도록 결정합니다.

또한 그들의 영혼에도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하느님의 사랑에 머무르며,

하느님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의 열매를 맺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 아니며

하느님께 응답함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우리가 지켜야하는 계명, 교회가 이야기하는 계명도

모두 하느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서 나온 것들입니다.

교회의 계명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영혼에 적용해야할 계명도

모두 하느님께서 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에 머무르십시오.

신심이나 열매가 아닌 그 모든 근본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머무르십시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내어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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