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이름으로 온 이들은 하느님의 뒤를 따라 온 것입니다.

바울라님 2019-05-16 12:33 ...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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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목요일]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2019.5.16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  13,13-25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  13,16-20

 


 

하느님 이름으로 온 이들은 하느님의 뒤를 따라 온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쭉 낭독됩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온 모세,

40년 세월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식별 기준과 수호자가 되어준 판관

이스라엘의 요청에 따라 왕을 선출한 마지막 판관 사무엘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이끈 사울

이스라엘 왕가의 중심이 되었던 다윗

이스라엘에서 조언을 했던 예언자들

메시아의 도래를 선포한 마지막 예언자 세례자 요한

이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직분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 역사를 선포하며

그 많은 위인들이 아닌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우리는 또 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느님을 앞서 행동한 것이 아닌 하느님 뒤에서 활동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에 대한 응답에 대해 잘 못 생각합니다.

내가 하느님께 말씀이나 직분을 받고 내가 앞장서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나 직분을 받으면 그 순간에만 하느님께 응답하고

그 후 떠나가 자기 멋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은 단순히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앞장 서 나가시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이름으로 온 이를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 앞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직분을 받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자신의 권한을 가르치는 빌라도에게

그 권한이 위에서 내려온 권한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유일신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빌라도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으신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는 바에서는 자신은 황제에게서 받은 권한이기에

그 황제의 뜻에 맞는 결정을 해야 맞았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직분과 그 위의 뜻에 맞게 행동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사안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사회를 이루며 다양한 공동체에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공동체 마다 본래의 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추구하는 선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고 식별의 기준을 삼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추구하는 선을 가볍게 보며

자신의 뜻을 외치는 이들로 인해 그 선이 망가집니다.

빵을 받아먹던 이들이 발꿈치를 치켜들며 그것을 준 “선”에 대드는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악들이 그 공동체의 기본 규칙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은 없습니다.

그 기본적인 것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뜻이 공동체의 뜻인 마냥 외치는 이들로 인해 망가지는 것이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보편 사제직이라는 개념이 선포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 회사 어떠한 모임 공동체는

(그것이 교회 공동체나 교계제도에 포함된 사제들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의 위는 하느님이 계심을 기억해야합니다.

공동체의 본래의 선을 추구하며

그 선이 더욱 하느님께 향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해야합니다.

빌라도와 같이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그 공동체의 본래 선을 추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고,

그리스도인은 거기에 더해 그 선을 하느님께 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누구든지 공동체의 본래의 선을 고려하지 않거나

하느님이라는 절대 선을 잊고서

발꿈치를 치켜든 이들을 따르는 이들은 그들과 똑같이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직분을 거치거나 직분을 받고 살아갑니다.

공동체의 본래 선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합니다.

하느님에 의해 나온 공동선을 앞서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와

하느님의 앞서 가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하루 자신의 공동체 구성을 기억해보십시오.

내가 지닌 직분의 권한과 의무가 어디서 온 것인가 되돌아보고

그 권한을 준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선이 무엇인가 명확히 보십시오.

그리고 그 선을 하느님과 일치시키기 위해 그 선 안에 계신 하느님을 키우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을 앞서가는 이가 아닌 하느님을 따르는 이가 되어야함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 당신 백성에 앞장서 나아가실 제,

그들 가운데 사시며 길을 열어 주실 제,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이 되어 쏟아졌나이다. 알렐루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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