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3주간 수요일]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2019.5.8
제1독서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 8,1ㄴ-8
복음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요한 6,35-40
공동체가 깨어졌을 때 하느님이 드러납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세워진 공동체를 돌다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일치를 외치고 공동체를 외치곤 합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이 교회 공동체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신앙에 좋은 이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향하면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쉬워지고
큰 노력 없이도 환경이 조성되기에 하느님을 쉽게 모실 수 있습니다.
사실 주변이 다 가톨릭이라면 함께 따르기 좋은 환경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과거부터 공동체성의 중요함을 많이 강조해왔습니다.
공동체는 어떤 의미로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아,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합니다.
이 공동체가 단순히 군중심리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공동체를 우상으로 섬기는 일이 없어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는 단순한 군중심리로 작동되는 것이 아닌
각각 개개인이 하느님을 향함으로서 오는 일치로서 모인 공동체입니다.
또한 개인이 해야 할 신앙을 공동체에 얹혀가는 형태의 신앙생활을 살아가면 안 됩니다.
자신이 그런 신앙인지 아닌지 식별할 방법은 있습니다.
또 우리 공동체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어 군중심리로서 움직이는 공동체인가 아닌가를
식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 공동체가 해산되면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교회가 박해로 인해 공중분해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교회 공동체가 무너지자 어떠한 일이 생겼습니까?
공동체가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흩어진 개개인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였습니다.
공동체가 깨어지자 각각의 사람이 하느님의 사도가 되어 공동체를 더 넓혔습니다.
인간적인 공동체 안에의 중심은 화합과 일치지만
하느님의 공동체의 중심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생김새는 보통의 공동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한 화합과 일치와 단순한 화합과 일치는 다른 모양새를 나타냅니다.
단순한 화합과 일치는 공동체가 깨어지면 혹은 공동체의 압박이 없어지면
따를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의 화합과 일치는 깨어지더라도
더 새롭고 더 커다란 화합과 일치를 가져옵니다.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뜻을 다시 기억합시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보내는 이'라고 표현됩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에 따른 응답을 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께 모인 이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섭리 자체는 하느님으로 부르심 받아 시작했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는 삶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계속해서 유지해야합니다.
우리의 삶이 단순히 공동체에 업혀 가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
자신을 성찰하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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