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느님 관계 안에서 행위가 완성됩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5-11 12:11:52   ... 조회수(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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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토요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019.5.4

 

제1독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  6,1-7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 요한  6,16-21

 


 

하느님 관계 안에서 행위가 완성됩니다.

 

최근에 초기 교회 교부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을 때 헤르마스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헤르마스는 식별에 인내를 기본으로서 바라보았습니다.

이 인내는 기다림으로서도 표현되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식별은 인내로서 행해야하며

이러한 인내는 다른 의미로 기다림으로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헤르마스가 인내를 표명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작용에 근거합니다.

하느님의 것은 인간의 동의나 반대 혹은 관심이나 무관심에 따라 바뀌지 않고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마귀나 인간의 가치는 누군가의 관심이나 기억 동의가 없으면

사라져버리는 가치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성인들이 최종적으로 식별을 할 수 없다면 관심을 끄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의미로 그대로 두고 기다리라는 뜻이죠.

 

이에 대해 같이 공부를 하던 동료와 한 가지 논쟁거리가 있었죠.

기다림과 반대로 행동해야할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어찌해야하는지 물었죠.

저는 기다림을 우선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동료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료는 야고보서를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는 그 행동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추가적으로 요한 클리마코스 성인께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의 단계를 이야기하는데

어둠으로 자신의 빛을 침투시키는 단계는

완전한 이들의 단계

즉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하는 단계는 완전한 이의 단계

즉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고 열매 맺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선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동료가 이에 납득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대처를 상당히 우선시 여깁니다.

이를 열매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사실 열매에 관심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상황을 마주하며 삶을 살아가니 말이죠.

그러나 오늘 사도들의 선택에 대해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상황을 대처할 때

하느님과의 관계는 최대한 유지해야함을

공동체에게 상기시키며 해결책을 이야기합니다.

아까 요한 클리마코스 성인의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만

성인의 말하는 단계에서 초보자 단계, 진보하는 이의 단계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의 기본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인데

그 노력은 초보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지함으로서 자신이 빠진 죄에서 나오는 것이며

진보하는 이는 선과 악을 명확히 바라보며 즉 외부의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이가 직접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초보자의 노력과 진보자의 노력은 계속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지속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왜 중요하냐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겪은 일을 우리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없는 상태로 먼저 행동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상관없이 행동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눔을 중시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친교를 중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부족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나누어야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을 중시하다보면

예수님 없이 호수로 나아가는 제자들과 같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폭풍에 휩쓸리게 됩니다.

우리도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떠내려가는 신세가 되죠.

결국 세상과 같이 하느님 없이 행동하는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기억해야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려는 순간 모든 행동이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이 하려고 했던 행위가 완성됩니다.

이 점을 묵상하고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해야하는가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 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명료하다면

하느님으로부터 조명 받는 우리는 그 안에서 맺는 열매도

우리가 내려던 열매보다 더 풍성이 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을 향하도록 우리의 삶을 봉헌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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