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만찬 성목요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2019.4.18
제1독서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탈출기 12,1-8.11-14
제2독서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코린토 1서 11,23-26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 13,1-15
멸망을 마주하기 전에 사랑을 놓아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우리는 최후의 만찬을 참여합니다.
말 그대로 멸망 이전에 우리는 주님과 최후의 만찬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 이전에 무엇을 준비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길,
즉 멸망과 창조의 반복이 이루어지는 그 길을 걷기에 앞서 준비시켜주십니다.
이 예식의 기본이 되었던 파스카 예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비시켜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파스카 예식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하느님의 것과 인간의 것이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파스카 예식을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의 영역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멸망이 지나갑니다.
그 멸망 안에서 인간의 것 안에 있던 에집트인들은 모두 멸망을 겪습니다.
참으로 쓰고 아픈 멸망, 회복될 수 없는 멸망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멸망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멸망이 지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십시오.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출발할 복장으로서 그 예식을 거행하며 서둘러 준비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멸망이 지나갈 때 서둘러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것 안에서는 멸망이 멸망에 그대로 멈추지만
하느님 백성은 멸망과 동시에 하느님의 창조의 움직임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항상 향해야함을 파스카 예식에 강조됩니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그 파스카 예식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찬례를 거행하십니다.
어제의 복음을 잠시 가져오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파스카 예식에 쓰일 파스카 음식은 제자들이 준비합니다.
그 음식을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제자들이 준비한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로 돌려주시며 그것을 통해 새 계약을 맺으십니다.
과거 파스카 예식에서는 문설주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하느님의 것과 인간의 것을 나누었다면
이제 명확하게 인간 자신 안에서
인간의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의 것을 채우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 자체가 하느님의 안에 있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계약은 주님께서 수난을 통해
당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바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승이 한 것을, 주님이라 부르는 이가 한 것을 그대로 따라야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주님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성찬례와 다르게 세족례를 보여줍니다.
세족례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성찬례와 다른 의미를 지닌 무언가가 아닙니다.
파스카 예식이 하느님의 것 안에 있는 것을 강조하고
성찬례가 영혼 자체를 하느님 안에 있도록 했다면
세족례는 영혼이 하느님 안에 있도록 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족례를 왜 하셨는가를 살펴야합니다.
복음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손은 우리의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행위 이전에 말이 드러납니다.
그 말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 생각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그 마음은 어디서 기반을 잡고서 나타나는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어디를 기반으로 나타납니까?
우리의 삶의 자리 우리 발이 서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한편으로 우리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자리를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가 하느님 안이라면
발에서부터 하느님의 것이 올라와 마음이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지며
생각이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집니다.
그리하여 말과 행동으로 즉 혀와 손으로 하느님의 것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손에 있는 것이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것을 아십니다.
당신도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과 같이
우리의 발이 하느님의 자리에 있음으로
하느님에게서 나와 우리의 행위가 하느님의 것으로 맺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발을 딛고서
그 모든 것을 거친 손을 통해 이웃의 발도 하느님의 것을 향해 정화시키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 발을 딛고 손으로 누군가의 발을 사랑으로 이끄는 것이 세족례입니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주님 수난 전 최후의 만찬에서 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그분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예수님을 통해 씻긴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나아가야합니다.
형제 여러분,
멸망과 마주하기 전에 하느님 것 안에 서 있으십시오.
당신의 영혼을 하느님 안에 자리하게 하십시오.
당신의 영혼에 하느님의 것을 채우십시오.
그것을 통해 나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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