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2019.4.12
제1독서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 20,10-13
복음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 10,31-42
식별 = 분리하여 판단하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느님의 향하는 영적여정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 안에서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즉 인간적인 관점으로 하느님을 향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느님의 선의 일부를 향하여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선의 일부를 바라보고서 그것이 전부라 여기고 그 안에서 고착되는 경우가 많죠.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도 사람 밖에서 있는 것 중 악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인간의 관점으로 나온 것들 중에서 악한 것이 나타난다고 하시죠.
그래서 식별은 영적 여정에서 참으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유대인들에게 또 우리에게 식별의 여정으로 초대하십니다.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식별은 어원적으로 '분리하여 판단하다.' 라는 뜻을 지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영적여정에서 문제점은
인간의 관점으로만 바라봄으로서 고착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을 인간적 관점을 내려놓고 판단하는 것이 식별입니다.
식별에 과정에서 자기 비움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인간의 관점을 내려놓는 것에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할 인간의 관점은
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관점을 내려놓지 못하면
예레미야 예언자를 내치려 했던 이들과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의 관계가 끊어졌기에 저주를 예언합니다.
나에게 다가올 불이익 아픔 불편한 것 때문에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 듣는다면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회복하면 됩니다.
그러나 불편한 이야기가 나온 것 자체를 문제시 삼고서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없애려 합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모습을 보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근본적인 대화가 아닌 불편한 이야기를 한 자신에 대한 저주로
돌아올 것이란 것을 말이죠.
그러나 예레미야 예언자는 백성들을 위해 계속해서 예언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죠.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자신이 불편한 것으로 인해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을 발견하기 못합니다.
하느님의 초대를 듣지 못하죠.
나에게 편한 것 나에게 선이라 여겨지는 것에만 하느님이 있다고 여기고
그 안에서 고착화되어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셔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가치 없는 것이기에 받아들이지 않죠.
나는 필요 없는데 계속 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불편한 것입니다. 마땅히 내쳐야할 것이 된 거죠.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그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모습을 보입니다.
표징이 없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행동,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선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식별의 여정을 걸으십시오.
나의 관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본질을 따라가십시오.
하느님에게서 온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한 이야기를 기억해주십시오.
인간은 자신의 관점으로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선의 일부만 가지고
그것이 전부라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느님의 선의 일부를 완성할 수 있도록 식별의 여정을 걸으십시오.
여러분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이 완성되어 하느님의 선이 완성될 것입니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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