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2019.4.10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 다니엘 3,14-20.91-92.95
복음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 요한 8,31-42
CREDO-나는 믿나이다.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논쟁하는 내용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관점을 명확하게 하고서 이 복음을 다시금 읽어봅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라 생각하기 힘든 이들과 대화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유대인들과 대립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신앙을 지닌 이들이 왜 예수님과 대립하고 있는 것일까요?
신앙을 하지만 사람의 아들의 관점이 아닌 여전히 육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에 대한 교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교의는 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또한 신앙에서 출발한 또 다른 이야기들과 수없이 대립해 왔습니다.
'신앙을 하지만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럴 리 없다' 라는 입장으로서
하느님을 바라본 이들이 많았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독서의 네부카드네자르처럼
자기 기준으로 금상을 만든 이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너희가 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또 내가 세운 금 상에 절하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네부카드네자르의 수많은 악기 소리가 울릴 때 금상만을 숭배해야하는 것처럼
그들의 선포는 예수님의 일부만을 선포하며 다른 것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예수님이 온전한 예수님이 아닌 무너진 예수님이 선포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해 죽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인데 내가 원하는 예수님 내 상식에 맞는 예수님을 원한 이들이 많았죠.
사도들은 이들을 거짓 예언자라 칭하고 각 교회 공동체에 이들에 대한 경고를 하곤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초세기의 이단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인간적인 요인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 믿던 초대 교회가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구원자 이전에 존재론적인 물음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대체 어떤 존재였고 메시아였는지 물음을 하기 시작합니다.
보편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삼위일체를 보존함으로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로 나타난 이단 그리스도에 대한 이단은
가장 근본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신앙은 있지만 형식이 없었던 유다교회와
신앙이 없는 대신 철학 등의 형식이 있었던 그리스와의 만남은 새로운 논쟁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로고스,
모든 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이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생 자체는 그저 연기였다 주장하여
십자가 수난을 무의미하게 한 가현설,
유대인들의 입장으로서 받아들여진 에비온 주의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닌 그저 간택된 사람이다.)
최종적으로 유일신 사상으로 예수님과 대립했던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니었다 주장한 단원론
(하느님만이 유일한 하느님)
성자의 존재 자체를 없앴던 양태론(성부가 모습을 바꾸어 삶을 살아감 성부수난설) 까지
모두 하느님을 믿던 이들의 사상입니다.
최종적으로 아리우스도 예수님은 반신인 창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리우스도 유일신 사상을 지키려고
유일신을 버리고 다신을 향했던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억하며 했던 신앙입니다.
자신이 인간의 관점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잊고서
신앙을 하며 살아간 경우가 수없이 많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믿습니다. 그러나 교리의 일부만 믿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교리만 바라보려 하죠.
결국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의 아들을 따르는 이들이 아닌
육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따르는 이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이단들에 대해 이해하는 데에는 인간적인 문화들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이단의 사상을 외쳤던 것은
하느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도 믿는 이들이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받아들인 자신들의 최대한을 통해 만든 금상을 믿는 이들이었죠.
이들의 주장을 지키기 위한 교의는 참으로 신기하게 하느님의 것인 동시에
문화를 포괄하지만 인간의 문화로부터 나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것과는 정반대이지만 인간을 받아들이는 무언가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신앙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이를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만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느님을 믿지만 교회를 믿지 않습니다.” 는
하느님을 믿지만 세상에서의 성령의 섭리를 믿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에서 부분적인 것만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치장하고 합리화하고 싶지만 결국 믿지 않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CREDO(나는 믿습니다)로 신경을 시작합니다.
신경을 되돌아봅시다.
우리가 부족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CREDO)
(저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저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저는) (성자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저는)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저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저는)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저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저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저는)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그대로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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