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자기 비움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4-03 09:55:47   ... 조회수(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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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19.4.3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이사야서  49,8-15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  5,17-30

 


 

자기 비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께 모든 권한을 받았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권한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참으로 과격하고도 놀라운 자신감으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큰일 날 이야기였죠.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감 있게 자신의 심판이 올바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근거로 이야기할까요? 하느님과의 관계로 이야기 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다가 어떤 사적 계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를 형제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하느님께서 나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는 이야기로는

교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그리하지 않으셨고 이 세상에 맞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것을 다른 이에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풀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논리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헛된 생각을 지녔다면

그 신앙은 혼자 지녀야하지 누군가를 지도할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저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로 이를 증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죽을 말씀을 하셨지만 명확한 이유를 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자기 비움 예수님 육화 사건의 가장 큰 비중이 바로 자기 비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신 나머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간이 되어 오셨죠.

그리고 지상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아버지의 것을 받아들였기에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도자의 이야기를 듣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또 사견을 추가하지 않고서 그대로 전해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지도자의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에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이들의 생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세우신 아들입니다.

이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있는 “너”에게 이야기하십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사명이 주어졌지만

참으로 나약한 인간인 것이 스스로에 자주 갇히곤 합니다.

내 업적을 치장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기도 하며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스스로 신앙을 키우면 잘 된다고 하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고난이 다가오면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으로 여깁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축복도 주시고

양식도 주시며 그들이 보람이 느낄 활동도 주십니다.

동시에 그들을 성장시킬 고난도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으로만 보면 나의 업적이며 나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주어진 것만을 바라본 결과

나에게 이런 것들이 주어지는 본래 목적을 잊게 됩니다.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갇힌 이들에게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임을 잊고서

내가 먹을 것만 먹고 보호 받을 것만 보호받고 조금만 고난이 오면 소리치기 바쁩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께 향하도록 만드는 사랑의 활동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비우며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를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영혼 안에 계신 성령의 이끄심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내가 아무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명들을 충실히 지키고 기도를 열심히 한다한들,

서른여덟 해나 홀로 고통스럽게 있던 이,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 버린 이가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내가 가득 찬 그 신앙에서 작은 생명 하나 살리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앙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나를 내려놓고 하느님의 것으로 넓게 바라보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이 시대에 누가 있을까요, 그 누구도 나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에 빠진 이들,

전쟁 속에서 삶의 희망이 죽어가는 사람들?

수없는 경쟁 시대에서 지쳐가는 사람들?

홀로 버려진 미혼모?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독거노인들?

안락사가 최선이라고 권유받는 중환자들?

말도 안 되는 잉태이기에 행복을 가로막는 기생충으로 여겨지는 태아?

우리의 신앙은 여인이 잉태하여 낳은 아이를 표징으로 삼으며

말도 안 되는 잉태로 태어난 아이를 그리스도로 모시며 살아갑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그 신앙에서 나로 인해 수많은 표징들이 가려지며

그리스도는 행복을 가로막는 기생충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의 신앙의 첫 걸음이자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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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9/04/03 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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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오늘 복음 묵상감사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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