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것은 닿는 곳마다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바울라 2019/04/03 09:27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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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화요일]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2019.4.2.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파스카 성야 세례 서약 갱신 후 따름 노래).>

▥ 에제키엘  47,1-9.12

 

복음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 요한  5,1-16

 


 

하느님의 것은 닿는 곳마다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성경에서나 역사에서나 유대인들을 보면 율법을 정말 죽을 각오로 지키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의 현대에서도 젊은이들까지 놀라울 정도로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이렇게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은 초월적인 분이라 사실 우리는 하느님을 알 방법도 없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연결고리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런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해주신 것이 율법이고

그렇기에 율법만이 하느님께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율법에서 벗어나면 구원의 길이 완전히 막힌다고 생각했죠.

예수님의 행동은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미칠 행동이었죠.

특히나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로마를 상대하는 정치적인 입장도 있지만

율법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틀 안에서는 사목적인 입장도 있었기에

예수님을 적대시한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정치적 목적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일반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행동을 적대시한 이유도 예수님의 죄인에 대한 행동이

자신들, 이스라엘 공동체의 부정으로 다가올 수 있었기에 적대시 한 것이죠.

우리 안에서도 이단을 경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경계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기까지가 지금 한국 가톨릭에는 유명하게 알려진 이단의 주장과 같거든요.

그 이단 종교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박해 받는 우리가 사도들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것을 적대시하며 자신을 높이는 행동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서에 나오듯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닌 완성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부족했습니다.

사실 오늘 독서기도에서 읽혀지는 내용은 율법 계명 중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 계명들은 모든 이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또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그 누구도 고립되지 않고 물의 흐름과 같이 순환이 되도록 하는 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율법의 열매는

구원을 위해 서로 경쟁하며 누구를 밀쳐야 구원이 되는 현실이었습니다.

나의 훌륭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러한 율법주의에는 서른여덟 해나 버려져 공허하게 살아온 이웃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이스라엘의 부족함은 하느님을 나의 밖에 있는 존재라 생각한 것에서 있습니다.

나의 밖에 있기에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통해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 데에 있습니다.

오늘 벳자타 못가의 병자들에게는 바깥의 물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언가를 건너서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통하여

하느님께 건너가는 것을 우선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물은 정복하여 건너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율법 또한 완벽하게 지켜 하느님께 건너가는 것이 목적인

단순한 다리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율법은 독서에 나오는 물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나와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물을 건널 수 없는 대상이 되어 감을 보여줍니다.

대신 그 물을 통해 많은 생명이 불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같이 하느님께서 주신 물을 순환시키십니다.

어찌보면 성부 하느님만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던 이스라엘에게

모든 이 안에 계신 성령의 작용과 그 성령과

성부 하느님의 연결고리로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외아들을 채워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연결고리가 연결되어 완성된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셨던 성령을 일깨우시어 들것을 들고 걸어가게 하시며

자신을 낫게 한 이가 예수님이라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삼위일체 안에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 맺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나의 형제로 하여금 성부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까?

형제 안의 성령을 일깨워주도록 만들어줍시다.

형제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도록 예수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형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 자신은 어떠합니까?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묻겠습니다. 여러분 영혼이 사랑으로 채워졌습니까?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사랑의 물은

한계나 경계선이 없이 순환하며 모든 것에게 생명을 채워줍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면 하느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시기에 사랑 또한 경계선이 없습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소서.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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