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기준

바울라님 2019-04-03 09:17 ... 조회(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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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월요일]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2019.4.1

 

제1독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 이사야서  65,17-21

 

복음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 요한  4,43-54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기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교육학적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시간이 천천히 가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새로운 것을 수없이 받아들이는 그 시기는

뇌에서도 새롭게 받아들이고 참으로 풍성하게 차있기 때문에

시간이 참 길게 느끼는 것이라고 하고

조금 나이가 들고 익숙해진 삶에서는 익숙한 패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풍성하기 보단 자연스럽게 지나는 시간이 많기에

비교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시기 보다는 얇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에게는 시간이 천천히 가고 빠르게 간다고 느껴지는 것이죠.

우리 안에서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느끼는 것들은 풍성하게 받아들이는데

익숙하게 느끼는 것들은 얇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죠.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복음서는 증언합니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이 증언은 예언자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이들은 이를 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가 새로운 것을 주어도 그저 익숙한 데로 받아들이죠.

이러한 전제를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지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주어야 우리가 믿을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참으로 답답해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새로운 것이라 불리는 것이 있어야

우리는 감사하고 특이한 일이 있어야 찬양합니다.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며 새로운 것을 통한 감동을 통해 신앙을 키우고자 합니다.

뭔가 말투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 마냥 이야기했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왕실 관리는 아들을 살리는 이적을 보고서 그 집안이 믿었으니 말이죠.

이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익숙한 것은 얇게 느껴지고 새로운 것은 풍성하게 느끼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니 말이죠.

그러나 새로운 것조차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려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단순히 창세기 1장과 2장에 적힌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창조가 쭉 이어진 것이 섭리인 것입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하느님께서는 늘 새로운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지성이나 기억으로 정립한 공식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예언자가 가도 자신이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입니다.

어디선가 A를 악이라고 스스로 규정지었다면

하느님께서 A를 즐거움으로 창조하셔도 악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준이라는 악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인간의 시간으로 표현했을 때 1초 전과 1초 후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러나 이 사이에도 자신의 기준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바라봅니다.

1초 후가 되었음에도 1초 전에 고립된 기준으로 바라보죠.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즐거움으로 창조하시고 기쁨으로서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를 올바로 바라보자 한다면 하느님의 것을 통해 바라보아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왕실관리는 자신의 기준 “예수님이 와야 한다.” 라는 것과

예수님의 기준 “가라” 라는 말씀과 부딪힙니다.

이때 왕실관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을 누리게 됨을 기억해야합니다.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온 사람들 즉 제자들이나, 갈릴래아 사람들이나,왕실관리와 같이

하느님의 창조를 보고서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은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것을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기준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넘어 보고자 노력해야합니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기준을 만들었어도 그 기준이 하느님의 비해 작은 것임을 인지하고

하느님의 기준을 통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기준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를 자신의 기준으로 익숙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풍성하게 받을 것을 얇게 받고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나의 고립된 기준에서 구해주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을 신앙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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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9/04/03 09: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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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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