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2019.3.21
제1독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예레미야서 17,5-10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 16,19-31
그릇이 있더라도 그릇답게 써야합니다.
성서는 자주 부자는 악인으로서 지옥에 가며
가난한 사람은 선인으로서 천국에 간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부자가 악인으로 표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자라는 표현은 그들이 가득 찼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어떤 교리교사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기에
저는 취업을 위해 토익이라도 준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이들이 영어교육이 너무 잘 되어있어서 영어를 모르면 아이들이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워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손님이 왔을 때 그릇이 아무리 예뻐도 그 안에 담아줄 것이 없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또 두루미 손님에게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똑같이 예쁜 그릇을 준비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예쁜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에 담을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이 상대를 위한 수많은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알려주어야 합니다.”
부자는 마치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자랑하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다른 것을 얕보죠.
특히나 완전히 정반대의 것은 무시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통역기를 들면 그 아이들과 같아지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 아이들이 참으로 우스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것은 하느님에 비해 굉장히 작은 부분임에도
이를 가지고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다른 이를 깔보고 무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것은 어느 순간에 메마름이 오게 됩니다.
마치 예쁜 그릇에 담을 것이 없는 것처럼
또 예쁜 그릇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자신만 자랑스러운 장식품이 됩니다.
그 장식품이 생명의 양식이라 여기는 이는 메말라 갑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반면 가난한 이는 자신의 나약함을 직관하고 다른 이와 조화를 이루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것과 다른 이를 교류하며 서로의 나약함을 채우려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웃 간의 통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도 통교하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둘 이상 있는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는 영어를 쓸 줄 알더라도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사람과는 한국어로 이야기합니다.
외국인에게는 통역기라도 들고 갑니다.
그들에게는 통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릇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것의 본래 역할인 음식을 담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통교가 진행되는 이는 시냇물과 나무의 관계와 같습니다.
시냇물은 나무에게 물을 주고 나무는 자기 밑의 땅을 뿌리로 잡고 있음으로서
땅이 물의 흐름을 막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나무는 무더위가 오더라도 가물지 않고
시냇물은 폭풍우가 오더라도 땅이 무너져 물이 막힐 위험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남보다 무언가가 뛰어나다고 모든 것에 자만하고 우위에 앉은 사람들은
오늘 복음에 나온 부자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라자로를 깔보다 못해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에 부자가 라자로에게 가지도 못하고
라자로도 부자에게 갈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결국에는 서로의 교류가 불가능 하게 만들었습니다.
시냇물은 땅이 계속 무너져 더럽혀진 끝에 물이 막혀 흐름을 잃었고
나무는 물이 없는 나머지 가물게 됩니다.
사실 지옥과 천국의 간극이 부자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부자의 자만과 오만이 없던 간극을 더욱 깊게 만들어 마침내 건널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반면 라자로는 계속해서 교류를 하려 노력합니다.
그 결과 천사들도 그에게 쉽게 다가가며 아브라함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형제 여러분,
이 이야기가 단순히 물질적으로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이의 이야기로 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떤 이에게 들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자의 자녀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 오히려 예의 바르고
이것저것 배우려는 노력을 많이 보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남의 도움을 당연시하며 더 적대시한다'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고서 살아가는 이가 부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랑하려는 이가 가난한 이입니다.
타인과의 교류를 사랑이 아닌 이득관계로 여기며 필요에 의해 잇고 끊고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 누구도 그 메마름을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사랑으로 열린 마음의 나눔을 실천하십시오.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 사랑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나눔을 실천해야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https://blog.naver.com/crodei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