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2018.6.27
제1독서 <임금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말씀을 백성에게 읽어 주고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 열왕기 하권 22,8-13; 23,1-3
복음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마태오 7,15-20
가시나무는 가시나무여야 좋은 나무입니다
어떤 나무는 좋은 나무라 불리고 어떤 나무는 나쁜 나무라고 불립니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이 기준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좋은 나무고 무엇이 나쁜 나무일까요?
오늘 복음에 나온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좋은 나무일까요?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나쁜 나무일까요?
포도와 무화과나무는 맛있는 열매 달달한 열매를 맺으니 좋은 나무라 한다해도
가시나무와 엉겅퀴도 나쁜 나무는 아닙니다.
가시나무는 자연에서 작은 동물들의 피난처가 되어줍니다.
또한 엉겅퀴도 관상용 식용 약용으로 주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당시 예수님의 식견이 좁았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과 악을 갈라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조금 역설적인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그래,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겠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갖가지 노력을 한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만 맺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태생이 좋은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는 좋은 열매만을 맺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나무에서 정말 좋은 열매만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농부가 판단하기에 이건 팔 수 있겠다 하는 최상품만 나무에 열릴까요?
모두 단 열매만 나무에 달릴까요?
아닙니다.
열매는 한 나무에 있더라도 정말 미세하게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도 수확할 때 분류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라고 모두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보면 좋은 나무가 단순히 태생이 좋은 나무,
종이 좋은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좋은 나무는 자기 자리에 있는 나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헛되이 창조하신 바가 없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가 있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즉 약육강식이라 보이는 모습에도 강자도 약자에게 어떻게든 이점을 전해줍니다.
만물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주신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정해주신 자리에 있는 나무가 좋은 나무이고 그런 나무는 좋은 열매만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나무는 무엇일까요?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나무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열매와 그 나무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가 포도열매를 맺으려 노력한다면 그 가시나무는 나쁜 나무입니다.
또한 엉겅퀴가 무화과를 맺으려 하는 것도 좋은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지 않다고 여겨진다고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함은
그저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모방하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내면의 자신과 추구하는 삶이 맞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가시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으면
아무도 그 열매를 따먹지 못하고 열매 또한 나무 때문에 상처 입습니다.
또한 엉겅퀴와 같은 풀꽃이 무화과와 같은 무거운 열매를 맺으면
그 열매에 자신이 짓눌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나무가 좋지 않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어 바로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본받으십시오.
'가서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을 두고,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주님께 문의하여 주시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물론 이스라엘도 열심히 살고 잘 살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회개하는 이유는
세상이 이야기하는 좋은 것에 맞추어 살았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것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 좋은 성격이라 하면 바꾸어야 하고
좋지 않은 자리면 피해야 맞는 것이며
받으면 실패한 것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야기하는 좋고 나쁨을 떠나
하느님께서 이야기하시는 좋고 나쁨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쓸모없는 것을 창조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의 만족과 불만족이 있을 뿐이지요.
이는 모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스라엘 임금도 바로 행합니다.
임금은 모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사제들과 예언자들, 낮은 자에서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데리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모든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다양한 성격 다양한 자리에서 태어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성공한 삶 진정한 행복이라 불리는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나의 성격을 바꾸기도, 또 나의 자리를 더 바꾸길 원합니다.
저는 꿈을 꾸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꾸되 이러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더 높은 자리에 있을 사람인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서 이런 자리에 있다.
내가 이런 처지에 있는 것은 세상 탓이다. 성격이 이래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형제 여러분
다른 이의 열매는 그만 바라보고 자신의 열매를 바라보십시오.
사실 사람들이 성격을 바꾼다고 하지만 성격은 즉 그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성격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낼 뿐입니다.
또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좋은 자리에 있다고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자리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자리를 탓하는 사람은
좋은 자리로 오를 수 없습니다.
매사의 자신의 자리, 자신의 성격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자신을 알아가고 지금의 내 상황을 바라보며
내가 어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도하십시오.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들은 고정된 하나의 자리만 주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자리가 주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는 그대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에 충실하며 다른 자리를 탐내지 마십시오.
그런 나무가 나쁜 나무입니다.
지금 가시나무의 역할을 받았다면 가시나무의 역할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런 나무가 좋은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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