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2019.3.12
제1독서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 이사야서 55,10-11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 6,7-15
주님의 섭리에 모든 이의 완성이 담겨 있습니다.
어제 묵상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느님을 사랑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주장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와 관계없이 세상이 잘 돌아가게 하면 되는 분이다.’
‘ 하느님의 뜻을 따라봤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이런 것이죠.
뭐 기도를 잘 안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도 있고,
신앙을 강요하는 어떤 소설 작품에 나오는 신도 있죠.
근데 이것이 참으로 많은 이들을 유혹하는 마귀의 목소리입니다.
유혹한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점에 대해서는 마귀들이 사람들을 설득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귀들이 예수님을 보고서 많이 외치는 말이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라는 말입니다.
마귀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설득하는 작업을 계속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더구나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이러한 생각이
많이 퍼져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신앙태도가 남아 있을 리가 없거든요.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에서 그러한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일종의 기복신앙이죠.
기복 신앙을 지양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기복신앙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주님의 섭리를 믿지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 중에 멈칫하게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종종 굳이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죠.
나의 복을 위하여 어떤 사람의 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맞을까?
심지어 묵주기도까지 하면서? 저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스로 하고 있던 이 기도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죠.
주님의 섭리 안에서 주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누군가를 잊으셨을까?
당연히 주님의 섭리 안에는 필히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완성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이런 기도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우리는 서로가 힘들어할 때 “당신의 무엇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의 완성이 하느님의 섭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완성보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완성이 더 나은 것임을 알고 있으니
우리의 걱정으로 주님의 뜻을 감히 좁히는 일이 없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예수님께서 주신 기도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로 이야기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렇다면 스스로 제 것에 반박을 해보죠.
제 논리라면 하느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도 필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독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는데
하느님의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맞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기도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해달라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물론 적힌 그대로만 읊조린다면 하느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러나 저 기도를 하는 인간은 무엇일까요?
거기의 숨은 뜻은 인간 자신은 자신의 욕망이나 자신의 생각 지성 말과 행동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긴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이루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가 하느님의 섭리에 장애물이 되겠습니까?
성경에 역사에 따르면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선택하는 자유의지로 많은 장애를 겪습니다.
그러한 역사 안에서 나의 욕망이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그것 자체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그 기도를 하는 이를 위한 숨은 장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를 자세히 보십시오.
인간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말이죠.
자신의 생계에 대한 걱정도,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한 증오도,
자신이 행했던 죄의 죄책감도 모두 내어 맡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섭리 아래 ‘모든 것의 완성’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하느님의 섭리 아래 당신의 자녀들의 완성이 가장 주된 목적입니다.
그분의 섭리는 사랑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이 때 우리 서로를 위로하는 말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가 아닌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진리의 되새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지니십시오.
버린다는 판단도 함부로 하지 말고 그대로 온전히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함께하십시오.
그분께서 완성시키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되새기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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