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로 있게 만드는 것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3-08 10:19:04  ... 조회수(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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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2019.3.7

 

제1독서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신명 11,26)>

▥ 신명기  30,15-20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  9,22-25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로 있게 만드는 것

 

아이들은 종종 부모님은 사랑에 힘들어하곤 합니다.

반대로 아이들은 이 사랑 때문에 수없이 망가지곤 합니다.

사랑을 받는데 왜 힘들까요?

사랑을 받는데 왜 망가져 갈까요?

부모님들의 성향을 상당히 극단적으로 나눈다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아이가 걸어갈 길을 정하는 부모와 그 아이의 자유를 존중하는 부모로 나뉘죠.

이 두 부모는 극단적으로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길을 정해준 부모의 아이는 자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자유를 존중해준 아이는 길이 없죠.

두 부모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도 가면 갈수록

이것이 좋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보입니다.

그 누가 부모라는 역할을 경험해보고서 하겠습니까?

정확히는 사랑은 사람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인데 어찌 사람이 완벽한 사랑을 하겠습니까?

그저 하느님의 사랑을 따라하다 보니 오류가 많이 생길 뿐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기반은 명확합니다. 온전히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죠.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온전히 그 사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누군가에게 휘둘리며 고통 받고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가 그러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있는 나” 이시듯

그 사람 자신이 자기 자신일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것 중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일 수 있게 할까요?

“자유의지”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언제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장해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 이 자유의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자유의지는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선택과 책임”

사람은 이 두 가지 균형을 지니고서 자유의지를 더욱 발전시켜나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언제나 인간이 완성될 길을 마련해주십니다.

그러나 강요가 아닌 선택으로 남겨두시죠.

또한 선택에 대한 결과는 확실하게 받도록 하시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그저 방목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것만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냐고 말이죠.

그래서 앞서 소개한 부모가 이런 형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좋은 길을 강요하는 부모와 좋은 결과만 쥐여주려는 부모가 말이죠.

하나는 선택을 짓밟고 하나는 책임을 짓밟습니다.

선택을 짓밟힌 자유의지는 퇴행되어 스스로 선택할 수 없게 됩니다.

삶이 끌려 다녔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책임이 짓밟힌 자유의지는 마찬가지로 퇴행되어 좋은 선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죠.

이는 결과적으로는 사랑의 시점이 다른 것입니다.

둘 다 그저 좋은 것을 사랑한 것이지 아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죠.

좋아 보이는 것에 유혹에 이끌려 사랑하는 것을 멸망으로 이끌게 됩니다.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자유의지를 성장시키는 것,

선택과 책임의 개념을 균형적으로 성장시키며 하느님의 선을 따른다면

수많은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얻는 길을 얻게 됩니다.

자유의지는 그 선택을 또 다시 선택하며 길을 걷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선택은 수많은 나쁜 선택을 통해서 나온다.

수없이 선택하십시오. 선택에 책임을 지십시오.

선택할 때 책임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이들이 이득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책임을 짓밟으며 나아가고 다른 이들의 선택을 짓밟습니다.

나에게 돌아올 있는 그대로인 결과인 책임에 집중하십시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께 돌아 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그 목숨을 잃더라도 목숨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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