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원죄의 중심은 선악을 가르는 것입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3-05 13:40:20  ... 조회수(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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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일]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2019.3.3

 

제1독서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 집회서  27,4-7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 코린토 1서  15,54-58

복음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루카  6,39-45

 


 

원죄의 중심은 선악을 가르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피정을 하였습니다.

4박 5일 정도 진행했던 피정이었는데 아쉬운 부분이 참으로 많은 피정이었죠.

피정 지도자께서는 하느님을 체험하셨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것을 느끼고 오셨고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뼈대는 정말 신앙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꼭 전해야할 이야기였습니다.

문제는 원죄가 섞였다는 것이죠.

원죄가 섞였기에 내가 느낀 좋은 것이 선이며 나쁜 것이 악이라고 생각으로 이어져 있더군요.

시작은 하느님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느낌으로 나아가서

그런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이러한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기준을 세우는 원죄는 많은 것을 무너뜨립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율법이 죄의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죽는 것을 입고 살아간다면 죽어가며 생명을 입고 살아간다면 살아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에 의해 유한한 사람의 판단에 의해 죄의 힘이 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을 그 법에 묶여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죠.

이를 떠나 하느님의 사랑은 생명의 근원으로 계속 나아갈 원동력을 줍니다.

이 둘 중에 무엇을 따를지 우리가 정해야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익숙한 원죄를 내려놓으며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힘든 과정이죠.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서로 반대되는 것을 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함부로 칭찬하지 말고 함부로 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칭찬이 중요한 점이 참으로 강조가 되고 있고

또한 명확하게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가 되는데

왜 칭찬과 지적 둘 다 하지 말라고 이야기가 될까요?

이는 원죄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칭찬은 그 사람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원죄를 돕게 되면 자신이 생각하는 선이 고정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적은 그 사람을 잠시 멈춰 세워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원죄를 돕게 되면 자신이 생각하는 악이 고정되는 결과를 가져오죠.

아무리 같은 행동이라고 결과는 정반대로 아니 함께 작용될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함께 일어날 수 있죠.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

좋은 것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만 받게 할 수는 없을까요?

이는 두 가지가 준비 되어야합니다.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둘 다 하느님을 위하며 받아야하는 것이죠.

이를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나의 기준이 점점 갈수록 하느님의 사랑에 가까워져야합니다.

순한 것은 좋은 것이고 거친 것이 나쁜 것이라는 그런 자신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 사랑의 여부를 보아야합니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관계 안에서 하느님이 온전히 계신가를 보아야하죠.

개인적으로 하는 행동도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니

하느님과 나의 관계에서 온전히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지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온전히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서로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선이 나오고 악이 나오는 것이죠.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온전한 선은 하느님뿐이시며

하느님과 닮은 성인들도 하느님의 선을 따르고자 노력한 이들일 뿐 선한 이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삶에서 기반이 무엇으로 삼고 있습니까?

조용히 앉아서 집중하여 기도할 시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도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언제나 기도를 기반으로 살아가야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모든 상황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죠.

우리의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을 더욱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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