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선포하느냐, 주님을 선포하느냐

바울라님 2019-03-03 20:24 ...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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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수요일]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2019.2.27

 

제1독서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 집회서  4,11-19

복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마르코  9,38-40

 


 

나를 선포하느냐, 주님을 선포하느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꼰대라는 존재는 그렇게 좋게 다가오는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이 말이 어른들을 비꼰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살펴본다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꼰대라는 말 자체가 듣기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예의 없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꼰대라는 말을 좀 더 살펴보니 어른들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꼰대라는 부류에 나이 어린 사람보다 어른들이 많이 있을 뿐인 거죠.

정말 20대인데도 꼰대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꼰대의 특징 중 하나를 본다면 그들이 자주 쓰는 말이 이것이라고 합니다.

“나 때는 말이야.”

 

정확하게 꼰대는 이런 뜻입니다.

과거 자기 경험에만 취해서 지금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죠.

즉 새로운 것을 인지도 못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꼰대라 불립니다.

이 단어가 어른들에게 자주 쓰이지만 이 현상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많이 발생합니다.

동시에 이는 신앙에서 크나큰 걸림돌이 되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또 형제와의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자기 개인적으로는 교만이라는 죄에 빠지게 됩니다.

나와 같은 길이 아니라면 잘못된 길이라는 생각에서 꼰대라는 현상이 발생하죠.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은 비슷한 일을 합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저도 상당히 자주하는 실수입니다만 이런 경우를 상당히 경계해야합니다.

상대의 길과 나의 길이 같다는 교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직종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나타나는 데

상대가 후배로서 자신이 거친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

그 과정 안에서의 고민이 자신과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면 커다란 교만입니다.

1년이든 2년이든 시대가 변한 것, 그 고민과 마주하고 있는 나와 상대의 성향 차이,

그러한 고민을 안겨주는 골칫거리가 사람이라면

내가 겪은 사람과 상대가 겪고 있는 사람의 성향 차이 등 많은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교만으로 묻혀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나 때는 말이야” 하며 내 이야기를 하며 나의 결론을 상대에게 강요합니다.

듣지 않으려는 태도를 본 따서 꼰대라는 말이 나오게 되죠.

이러한 듣지 않으려는 태도는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자신의 경험에 확신하여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게 신앙에서 부딪히는 이유는 결국에는 이와 부딪힙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른 선택과 내 경험에 따른 선택이 말이죠.

오늘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우리가 각자 안에 있는 하느님의 길과 하느님의 선택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내려놓고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어떠한 성향을 주셨고,

어떠한 상황을 주셨으며, 어떤 사람을 보내셨는지 최소한 그 정도는 알아야하죠.

대화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여야만 정답을 말할 수 있다 생각하죠.

그러나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해야 합니다.

결혼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사제가 부부생활에 대해 어떻게 면담해줄까요?

신부님들이 종종 듣는 이야기가 신부님은 결혼도 해본적도 없으면서

나를 어떻게 이해하냐고 한답니다.

사제가 이해하는 이유는 듣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상황을 아는 이유도 여러분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죠.

사제가 상황을 이해 못한다면 두 가지 이유입니다.

사제가 듣지 않거나 여러분이 말을 덜 했거나 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누어야하며 말하고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지혜를 지닌 이는 지혜의 길로 인도합니다.

 

지혜는 자신의 아들들을 키워 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

 

하느님의 지혜를 통해 최선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향, 하느님께서 주신 상황,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여러분이 골치를 겪고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에 최선은 누가 가장 잘 알고 있을까요?

과거에 그 상황을 겪어봤다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나 자신일까요?

그 섭리를 알고 계신 하느님일까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섭리를 부여해주시고 그 섭리를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 길이 행복의 길이든 고난의 길이든 말이죠.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길을 함께 걸으십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항상 여러분 옆에서 최선의 선택을 보여주지만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록 그 결과는 파멸이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그 사람 옆에서 늘 최선의 선택을 알려줍니다.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

 

하느님의 지혜는 꽤나 단순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께 주신 섭리 객관적인 상황, 서로의 성향,

그 안에서 드는 감정 등의 모든 것과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보십시오.

참으로 단순한 해결책이 나옵니다.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단순한 해결책이 말이죠.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단순한 대답이 나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주한 상황,

자신의 이름을 사칭한 새로운 그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하느님의 지혜가 보여준 대답을 한 번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단순하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이 지혜를 여러분도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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