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배척을 끊으십시오.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3-03 19:59:31  ... 조회수(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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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2019.2.24

 

제1독서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  26,2.7-9.12-13.22-23

제2독서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 코린토 1서  15,45-49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  6,27-38

 


 

배척을 끊으십시오.

 

우리가 원수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당장 크게 떠오르는 것은 나한테 크나큰 피해를 끼친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들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큰 의미로서 원수를 바라본다면 그 원수가 맞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원수라는 관계 속에서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자와 피해자의 유족’, 죄로 인해 시작된 증오관계도

증오가 죄를 통해서 관계에서 관계로 전염이 된 것이지 죄가 시작은 아닙니다.

증오를 통해 오염된 영혼이 죄를 통해 다른 영혼도 오염시키는 과정이 일어난 것이죠.

그렇다면 정말 백지 같은 관계에서

또 서로 안에 그러한 죄의 상처가 없고 오염이 없는 상태라 칩시다.

그 안에서 증오가 시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 그 불편함을 배척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신기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정반대인 개념을 가져다 놓겠습니다. 성실하다와 느긋하다.

이 두 가지 타입의 사람들은 서로를 싫어합니다.

정확히는 서로의 방식을 싫어하죠.

성실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에게‘게으르다’라고 표현하고

느긋한 사람은 성실한 사람에게‘여유가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삶의 방식이 다르다며 서로의 방식을 싫어하다가 서로를 싫어하게 되더군요.

그게 조금씩 발전해서 꼴도 보기 싫은 사람으로 관계가 형성되죠.

왜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원수가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이 정답이기 때문이죠.

내가 정답이면 나와 다른 것 심지어 정반대의 것은 무엇입니까? 오답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제 2독서를 읽어봅시다.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육적인 아담과 영적인 아담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바오로 사도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기억해보면

바오로 사도는 영을 중시했었습니다.

이제 하나만 정답, 다른 것은 오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을 중시했었으니 육은 오답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러한 관점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에서 자살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께서는 영을 중시하시는 성향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을 버리는 것이 아닌 함께 가져가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지닌 성향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를 오답 처리하고 다른 것으로 자신을 채우라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지니고 있는 것을 가져가지만 다른 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은 원수인 사울을 만납니다.

이 두 관계에서 증오는 전염이 이미 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부하는 사울을 당장 죽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단 한 가지만 배척합니다.

유일하게 한 가지만 배척한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배척을 배척하였습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것은 배척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내 성향에 이득이 되는 이들에게만 투자하지 말고,

내 성향과 맞는 이들만 받아들이지 말고,

심지어 나의 성향을 박해하는 이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과 타인 둘 중 하나는 죽어야한다는 개념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둘 다 함께하는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성향이 빛나는 것을 원하듯이

우리도 다른 이들의 성향이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방향을 볼 수 있도록 섬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러한 섬김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섬김은 사랑이라고도 표현하죠.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형제 여러분 내가 보기에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섭리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유일하게 하지 말라고 거부하신 것은 배척이었습니다.

처음에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셨고

사랑의 기회를 주시려고 자신의 뜻을 명확히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을 배척하려한 것이 원죄였습니다.

유일하게 배척되어야 하는 것은 배척입니다.

하느님께서 있도록 하신 것을 배척하지 마십시오.

받아들이고 섬기며 사랑하십시오.

자기 자신과 함께 나아가도록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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