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각자 자신의 길로 그리스도께 오고 막힙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3-03 19:37:32  ... 조회수(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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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습니다.>

2019.1.27

 

제1독서 <레위인들은 율법서를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 느헤미야기  8,2-4ㄱ.5-6.8-10

제2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코린토 1서  12,12-30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  1,1-4; 4,14-21

 


 

각자 자신의 길로 그리스도께 오고 막힙니다.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길을 보다보면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곤 합니다.

신앙의 길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길에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이 없이도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많이 보입니다.

순수하게 믿음으로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학문적으로 접근함으로서 예수님께 다가가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학문인데

그것을 깊이 탐구해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으며,

어떠한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 다가가는 사람,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

정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는 등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가가는 길은 참으로 많습니다.

제가 생각지도 못한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께 다가가는 사람들도 많죠.

실제로 얼마 전에는 비 신앙인인데 종교학을 공부하시는 분을 우연치 않게 만났습니다.

그분이 예수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그 말씀을 탐구했다하여 그 말을 쭉 들었는데

그분은 하느님 나라는 가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셨고

그것을 통해 이 세상에 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비신앙인이 그러한 것을 스스로 이해하고서 온다는 것이 신기했죠.

교회 안에 있던 밖에 있던 그리스도를 향한 길을 걸어온 이들은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이 맞이한 기쁨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긴 유배 기간 동안 이방인의 땅에서

수많은 위협을 겪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왔을 때 내 앞에서 낭독되는 율법서와 그 가르침은 큰 복음으로 다가옵니다.

또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퍼지면서 하느님의 길을 걷던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큰 복음으로 다가오고 그 복음을 들은 이들이 교회를 이룹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일치를 이루는 이들도 있지만 살짝 다른 기류도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독서와는 조금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주시하였다.”

사실 주시한 이들 사이에 칭송한 이들도 있지만 경계한 이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중에 제자들과 동시에

예수님을 고발하려 지켜보는 율법학자들이 있었던 것과 같이 말이죠.

‘이 사람은 하느님의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닙니다!’ 할 사람이 없었지만

이런 차이가 나타납니다.

어떤 방향으로든 예수님께 다가가는데 무언가 걸립니다.

내가 걸어오지 못한 길, 내가 이해하지 못한 길 때문에

예수님을 앞에 두고 그분과 일치되는 한걸음을 걸어가지 못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 중에서 이웃 사랑도 있고

이제 이웃 사랑을 위해 그들에게 나아가야하는데 내가 걸어온 길로만 다가갑니다.

그래서 이해 못하고 서로 불목하고 싸우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이 모습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대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믿고서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한 걸음 남겨두고 주시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앞서 바오로 사도께서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눈이 귀에게 볼 수 있게 하려 노력하고, 귀가 입에게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몸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따로 놉니다.

그러한 몸은 결국 생명체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몸이 생명체로 불리는 이유는 하나 되어 각자의 자리로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고 듣는 것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시고 어떻게 판단하실까,

형제를 바라보더라도 나의 시선과 이해가 아닌

형제가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바라보며

예수님 사랑을 통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 나아가는 그 길에서

서로 다른 길이 합쳐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 길 속에서 우리는 진정 이스라엘과 같이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됩니다.

형제 여러분 그대들은 잘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대가 그대의 길을 그리스도께 맡겨야 할 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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