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자비는 그저 덮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3-03 19:16:10  ... 조회수(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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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2019.1.16

 

제1독서 <자비로우신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 히브리서  2,14-18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 마르코  1,29-39

 


 

자비는 그저 덮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자비의 특성에 대해 한 가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를 살피기 이전에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자비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자비를 베푼다고 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그저 온전히 상대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일까요?

어떠한 나쁜 일이 있었더라도 그냥 없던 일로 여기고 지나가는 것일까요?

그것이 자비라고 할 때 자비와 부딪히는 가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진실이라는 가치입니다.

진실에 대해 추구하는 태도는 자비를 베푸는 행동과 부딪히게 되죠.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고민을 합니다.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상대를 추궁할 것인지

자비를 베풀기 위해 그냥 덮고 갈 것인지 말이죠.

그러나 이 두 가치는 서로 부딪히는 가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필요한 존재이죠. 오늘 독서에서 자비의 특성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저 덮어주고 상대가 아무런 짐을 지지 않게 하는 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방종에 가깝죠.

그저 형제를 무시하고 내 짐을 빨리 덜어 놓으려하는 욕망의 요구 마귀의 요구이죠.

자비의 이야기로 용서를 이야기할 때 많이 제시 되는 것이

내가 힘든 것을 내려놓기 위해 용서하라곤 하지만

이는 자비가 아닌 형제를 무시하는 행동이며 형제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는 행동입니다.

물론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 최선을 다했음에도 떠나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먼저해야할 행동은 아닙니다.

히브리서를 통해 바로 볼 수 있는 자비의 특성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서있는 그 자리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생각되며, 판단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서의 최선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자비이며 상대에 대한 증오를 내려놓고 사랑의 길로 이끄는 용서입니다.

이러한 자비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을 함께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상대가 죄를 지은, 죄인 아니 죄를 짓고 있는 상태는

병자이며 마귀에 들린 이들에 해당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비판한 것은

그들이 병자이며 마귀 들린 이들로 규정 짓고

사랑으로 일으킬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병자로 그대로 놔두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요즘 세대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그 시대에는 상대가 나는 병에 결렸으며 마귀에 들렸다는 것은 알게끔 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상대 스스로가 병자인지도 마귀에 들린지도 모른 상태로 살아갑니다.

알지만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정반대로 자신에게도 해당될지도 모르지요.

내가 병자이고 마귀에 들렸지만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할까요?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이 삶이 된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주는 형제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요즘 세대가 있습니다.

스스로 깨닫게 두는 것은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으며

올바른 길을 추구하고자 할 때 그 때 떠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그 사람 자신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분을 만나자, “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를 몸에 입으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그 분 자체로 자비로운 분이시기에

그대들을 병자 상태로 있도록 놔두는 분이 아닙니다.

형제에게 진실을 요구하십시오.

진실을 이야기해주십시오.

서로가 상대를 받아들여 그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십시오.

그 최선의 길을 찾는 데에 최종적으로 하느님을 찾아야겠지만

그 시작점은 서로 안에 있는 하느님께서 시작해주십니다.

자비를 입고 형제를 사랑하십시오.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또한 그대 자신이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자비를 전하고 함께 하십시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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