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랑의 길 속의 가라지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1-10 18:44:1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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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2018.1.10

 

제1독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 요한 1서  4,19―5,4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  4,14-22ㄱ

 


 

사랑의 길 속의 가라지

 

그리스도를 닮고자하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갑니다.

가톨릭 신앙을 따르다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이런 신앙의 길이 삶에 들어온 사람들은 각자 목표와 꿈을 갖게 됩니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모습 일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상당히 신기합니다.

여러분도 신앙에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다면

자신의 목표나 꿈 희망이 예수님의 모습 일부를 닮고자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떤 예수님을 닮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나요?

그런 목표나 꿈과 희망을 지니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겉모습을 목표로 삼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스승이신 그리스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진리를 선포하는 그리스도,

약한 이들을 일으켜주는 그리스도,

적대자들을 완벽하게 논파하는 그리스도,

조금 다르게 보았을 때 이 모습들의 공동점이 무엇일까요?

누군가의 우위에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은근히 많이 뿌려지는 가라지,

누군가 우위에 있고자하는 욕망이 주어지게 됩니다.

과거에 어떤 이는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아서 많은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면’

그런 이야기도 하고 또 자신은 어긋난 신앙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올바르게 바로 잡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듣기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밀밭 속에 뿌려진 가라지처럼

좋은 선의와 동시에 우위에 있고자하는 욕망이 섞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분이 그렇지 않은 이유는 이런 이유가 있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너희 가운데에서 무엇이 이루어 진 것일까요?

이것을 통해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들 가운데에 사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른 것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 모든 이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가시니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은 때때로 수평적입니다. 또한 때때로 수직적이죠.

아니 사랑은 어떠한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

모든 것을 도구로 사용하며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도 사랑을 완성합니다.

이 사랑에 가라지는 무엇이냐면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원하는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가라지입니다.

상대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완성시키려는 사랑은 가라지이죠.

하느님을 따르려면 하느님의 사랑을 따라야합니다.

하느님께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주신 것을 섭리에 따라 완성시키려 하시는 사랑을 따라야하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실 때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 사랑이며,

둘째가는 계명은 이웃사랑이라 하셨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본받지 않은 이웃사랑은 죽어가는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이 없는 사랑은

단순히 하느님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찾으려는 사랑의 가면을 쓴 욕망입니다.

또한 어떠한 형태든 이 두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며

정반대로 어떠한 형태든 두 사랑이 있는 것은 어떠한 형태든 사랑이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랑은 하며 살아가나요?

나의 모습은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살아가나요?

내 신앙의 형태가 종종 가라지가 있지는 않나요?

가라지를 뽑으려 내 모습을 바꾸지 마십시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살리는 것이 밀을 살리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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