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빛을 가지고 어둠으로 나아가십시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1-10 18:19:0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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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2018.12.26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사도행전  6,8-10; 7,54-59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  10,17-22

 


 

빛을 가지고 어둠으로 나아가십시오.

 

제 세례명은 스테파노입니다.

뭐 축하받기 위해 말한 건 아닌데, 어쨌든 스테파노 세례명을 가지신 분들이

공동적으로 겪으셨을만한 일이지만 저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이 12월 26일인데

예수님 생신 다음날이다 보니 주변 분들이 자주 까먹게 됩니다.

예수님 성탄 축하드립니다! 하는데 그 성탄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루만 기뻐하고 사라질 기쁨이 아니죠.

그러다보니 스테파노 성인이 묻히곤 합니다.

전 생일도 축하받던 말든 하는 사람이라서 별 생각은 없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 축일이 왜 예수님 생신 다음날에 있을까?

전례력에서 일부로 이렇게 넣었다면

성탄을 맞이하고서 그 다음날 기억하는 것은 주님을 위한 순교란 말이죠?

왜 그렇게 했을까요?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성야 미사를 드릴 때 우리는 미사 시작 전 성당의 모든 전등을 끕니다.

그리고 초의 빛만 있고 빛을 두르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구유에 도착하시면 그 때 온 성당이 환해집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다가 빛을 맞이하고

우리 모두 빛을 받아 기쁜 성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우리는 어디로 가죠? 밖의 어둠 속으로 가야합니다.

집에 가야죠. 세상을 살아가러 돌아가야죠.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어둠과 다시금 부딪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박해를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빛은 어둠으로 들어가면 박해를 받습니다.

빛이 약해질수록 어둠은 그 주위를 조르게 되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박해를 조심하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둠 속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말이죠.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을 맞이해야하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문제는 두려워 조차 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걱정 안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조심하라 이르셨지만 조심도 안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어둠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합니다.

가톨릭에서 삼대 원수라 불리는 세 가지 자기 자신, 세상, 마귀 이렇게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가르침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고

세상의 분위기가 이러니 하느님의 가르침을 말하려 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오히려 정치적 성향이라 하면서 그 경향들을 쫓아가며 서로 싸우려 하거나

공동체 내의 부조리를 그냥 두기도 합니다.

마귀는 이러한 어둠이 잘 퍼지도록 우리 앞길에 많은 장해물들을 두지만

그 장해물에 걸려 넘어져서 함께 뒹구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성탄의 기쁨으로 빛을 받아 빛을 둘렀지만

빛나는 성당을 떠나고 어둠을 만나는 순간 그 모든 빛이 사라집니다.

보호해달라는 기도는 두려워할 것이 있어야 보호해달라는 기도가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운 것도 없는데 그저 성경이나 기도서에 적혀있다고 보호해달라는 것은

헛된 기도 아니겠습니까?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살아가다보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에 장해물이 되고

혹은 맞서는 이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 보다

내가 말하는 것이 더 익숙하여 혹은 내 감정과 판단이, 세상의 법칙이, 마귀가 준 걸림돌이

주님의 가르침보다 익숙하여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받은 주님의 말씀을 보존하겠다는 것을 기억하고

세상의 어둠을 경계하며 살아가야합니다.

내가 의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맞는 상황인지 모르면

주님께 보호를 어떻게 청하겠습니까?

내가 임금들 앞에 끌려가서 증언해야하는 상황인지 모르면 어떻게 증언하겠습니까?

나의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 못하는 이들은

결국 넘기는 이들과 함께하고 채찍질하는 이들이 되며 증언하는 이를 심판하는 이가 됩니다.

그냥 크고 자극적이고 익숙한 것을 따라가기 때문이죠.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성탄을 마치고 우리는 빛나는 성당을 떠나 어두운 밤길을 다시 걷습니다.

그리고 또 성당에 돌아와 빛을 받고 다시 밤길을 걸어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빛나는 성당과 어두운 밤길 속에서 같은 빛을 갖고 있으라고는 안합니다.

내가 익숙한 어둠을 벗고 빛을 입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빛을 입어야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빛을 입으려 노력하면

어둠 속과 빛나는 성당에서의 빛이 같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어둠에 익숙한 채로 남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어둠 속과 빛나는 성당에서의 빛이 같아질 것입니다.

빛을 바라보며 나아가십시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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