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주님의 뜻은 단순히 이상일까?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1-10 17:59:53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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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간 금요일]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2018.12.21

 

제1독서 <보셔요, 내 연인이 산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 아가의 말씀입니다. 2,8-14

<또는>

제1독서 <이스라엘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18ㄱ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45

 


 

주님의 뜻은 단순히 이상일까?

 

‘성직자주의’, 우리 가톨릭교회가 무조건 성직자들의 권위로 휘둘리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교황님께서도 이러한 성직우월주의를 상당히 비판하시며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직자들이 우월한 이들이며 평신도들이 낮은 이들이다.’

어찌 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위치로 따지면 평신도들은 양떼이며 성직자들은 목자이니 말이죠.

그러나 교황님께서 비판하시는 것은 성직자들이 목자가 아닌 삯꾼이 되는 것을 경고하시죠.

목자들은 양떼가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하지만

삯꾼들은 양떼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자기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 봅니다.

신자들의 생명의 길을 위해 보필하는 것이 아닌

자기 종처럼 부리는 경우가 종종 보이곤 합니다.

돈 보스코 성인에 의하면 돈 보스코 성인께서는 이리 떼를 양 떼로 바꾸고

양 떼들을 목자들로 이끄는 소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들도 양떼들이 목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그것이 평신도 사제직 이야기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삯꾼은 그저 자신의 명예를 중요시하기에 그저 양떼는 양떼로 남길 바랍니다.

양떼는 영원한 양떼이며 지도자는 영원한 지도자 그저 선을 그어 놓고

그걸 즐기는 것을 성직우월주의인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이런 점이 남아 있는 이유는 평신도와 성직자 쌍방의 문제가 있습니다.

 

평신도 입장에서 먼저 바라보겠습니다.

평신도 입장에서 발생하는 성직자 우월주의는 이와 같은 말에서 시작 됩니다.

“저건 신부님이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사제나 수도자에게 종종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거나 아니면

사제나 수도자를 단체의 상관으로 두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지금 공동체에서 가장 하느님 뜻에 맞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고

저 사람들은 기도도 많이 하고 인내심도 강하니까 가능하지 그런 식으로

나는 못한다는 것을 합리화합니다.

평신도 스스로 자신을 성덕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으로 못 박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평신도와 성직자를 갈라놓는 매개체가 되죠.

 

오늘 독서와 복음은 기쁨을 표현합니다.

나에게 다가온 예수님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죠.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예수님이 불편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내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그저 포기합니다.

내 앞의 현실이 좋지 못하다 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무시하는 것이죠.

우리 현실에서 실천하기 힘들다면

먼저 기도하며 어떻게 할지 주님과 함께 논의하고

부족하면 다른 이들과 함께 논의하며 그런 과정을 거치며 노력해야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순간이 다가왔는데

그저 공짜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며 내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가운데 알게 됩니다.

이를 실천하려 노력하는 태도를 잊는 순간 주님을 통해 받을 기쁨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는 이들을 이상주의라고 이야기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사는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진정 현실적인 사람은 내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고민하는 이입니다.

자신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또한 실천해야할 사람도 본인이죠.

내 상황에서 최선을 실천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서로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스스로 고민하고 주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대가 실천해야할 주님의 뜻이 꽤나 많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당신이 실천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닌 당신 안으로 들어오는 기쁨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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