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시작하지 않을 것이 새해 목표입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12-03 10:04:33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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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2018.12.2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  33,14-16

제2독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 테살로니카 1서  3,12―4,2

복음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루카  21,25-28.34-36

 


 

시작하지 않을 것이 새해 목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전례력의 시작인 대림 1주일 또다른 새해처럼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새해 계획을 세운다면 우리는 보통 어떤 계획을 세울까요?

주로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계획으로 신앙을 시작하게 될까요?

우리의 시작이 어떠한 말씀으로 시작하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새해 첫 날의 복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종말을 말씀하십니다.

시작할 것도 없이 종결되고서 시작되는

새해를 맞이하는 신앙의 전례력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시작부터 우리는 하느님께 종말 예언을 듣고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종말은 허구라 말하고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 이유는 종말은 인간들의 모든 활동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냥 죽음은 업적이라도 남기지만

종말은 남겨진 모든 것까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종말을 꺼리고 보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종말을 새해 첫날에 맞이하며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새해 첫 날 종말의 예언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인간의 모든 활동이 무의미함을 기억하라는 의미와

더 나아가 우리가 시작하지 않는 것을 새해 다짐으로 시작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신앙의 여정의 시작인 이 시기의 이름은 대림시기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스스로 시작하지 않고 그대로 오는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우리가 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할 때 우리는 먼저 출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기다린다와 먼저 출발한다는 의미는 정반대의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출발할 때 우리는 상대의 의견을 물을 수 없습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상대가 따라오는 것을 전제로 행동합니다.

우리의 새해 계획을 내려놓고 기다림을 기억하며

새해를 시작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우리의 계획에 하느님이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 당연해집니다.

우리는 정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고 맞이한 후 우리의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우리는 이를 알고 있지만 기다림이 잊어버린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기다림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 앞에 다가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에 충실한 것입니다.

참 쉽게 말하지만 이것이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은 사실입니다.

정보화시대인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받습니다.

이 정보들을 잘 이용하면 우리에게 좋은 이득으로 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앞서나가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받아들여야할 현실이 너무나 커집니다.

그것도 현실 속의 현실이 아닌 가상 속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아지죠.

가상으로부터 오는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 많으니 당장 앞의 현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에 수많은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앞의 상대에게는 대충 대답하는 것과 같은 점이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스마트폰

의식적으로 보지 못하면 기다림을 잊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게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다가오는 현실을 마주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우는 현실을 듣기 싫다고 외면하여 스마트폰을 쥐여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해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연을 마주하고

보여주는 시야를 받아들이고

보여주시는 울림을 들어야합니다.

앞서 나아가서 받아낸 것들을 대부분 허상이며 가상입니다.

허상과 가상에 빠져 사는 이들은 눈 앞에 있는 것을 필요 없어 하고

눈 앞에 없는 것을 찾습니다.

또 정해진 순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널린 자기 생각이 진리인양 살아갑니다.

현실을 기다리며 다가온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가 기다림을 기억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맞아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것이 종말이라 할지라고 종말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현실을 두려워하여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형제 여러분 당장 자신 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충실하십시오.

화면 속의 현실과 내 눈 앞의 현실이 부딪힌다면 먼저 내 눈 앞의 현실에 충실하십시오.

스마트폰과 정보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러나 눈 앞의 사람은 그 자체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폰 너머의 멀리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앞서지 말고 현실을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현실을 기다리는 자세로 신앙의 시기를 시작합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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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love모바일에서 올림 (2018/12/03 22: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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