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게으른 지도자

바울라 2018/11/12 오후 04:47 (421)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2018.11.12

 

제1독서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원로들을 임명하십시오.>

▥ 티토서  1,1-9

복음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 루카  17,1-6

 


 

똑똑하고 게으른 지도자

 

지도자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지도자 유형을 보면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어리석고 성실한 사람,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

이 때 단체에서 가장 피곤한 사람으로 뽑자면 어리석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고

단체에 가장 이로운 사람이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지도자로서는 똑똑한 것이 좋은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 안 좋은 것이며

성실한 것은 좋지 않고 게으른 것이 좋다고 이야기되는 내용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왜 시작하냐면

바오로 사도께서 서간을 시작하며 맡기신 것이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똑똑하고, 어리석음, 성실함과 게으름

사람 인성 자체가 그럴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동체 지도자로서 공동체에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똑똑하고 어리석은 것의 차이는 무엇이 중심인지 아는 것입니다.

똑똑한 것이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야할 것을 아는 것이죠.

그것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아는 이들이 무엇이 중심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이일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할 중심은 무엇일까요?

그 집단의 업무형태 그런 것일까요?

그 중심은 이 단체 안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아는 것입니다.

사제단으로부터 들었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어딜 가든 금세 적응하고 주어진 의무를 수행 잘 한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그냥 단순히 많이 아는 수준인 사람은

오히려 일만 많이 벌이지 공동체 자체를 흔드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께서는 하느님의 사도로서 그 의무를 말씀해주십니다.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는 것이

지도자의 중심 되는 의무입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그 집단의 업무 형태를 배우면서 듣는 이는

금세 그 집단에 적응하여 지도자의 의무를 다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그저 일을 벌이고 기획하는 것만 잘하는 이는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당장 좋은 결과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지뢰와 같은

마귀의 장난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곤합니다.

예를 들자면 당장 하느님과의 일치가 아닌 집단 안에서 만의 일치를 이룬 경우도 있고

모든 이의 일치라지만 소수만의 일치를 이룬 경우도 있으며

결과만을 중시하여 죄를 범하면서 그 결과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심을 아는 것이 똑똑한지 어리석은지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주님의 뜻을 찾는 이가 똑똑한 이로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성실하고 게으른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오로 사도께서는 오늘 티토를 착실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티토는 좋지 않은 지도자였을까요?

아니요 사실 착실하게 게으른 사람이 존재합니다.

의미를 정확히 하자면 게으른 행동을 착실히 하는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애매해서 다르게 표현하자면 성실한 것은 능동적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게으른 것은 수동적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착실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원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실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원로는 흠잡을 데 없이 착실하게 중심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듯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가정을 사랑을 기반으로 신앙으로 이끄는 사람이며

그 중심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똑똑한 것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거만하며 쉽사리 화내며, 타인에게 경청하지 않고 자기 길을 난폭하게 나아가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을 안 하는 것은 능동성을 포기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죠.

또한 자기에게 온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며,

하느님의 선을 사랑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가르침 받은 대로 살아가는 이는

능동적인 것을 포기한 수동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중심을 잡고 있으면서 하느님과 모든 이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하느님의 섭리의 지도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용서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 자신이 능동적이게 되면

상대는 수동적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수동적이게 되면 상대는 능동적으로 움직이고자 하죠.

물론 상대가 죄를 지으면 능동적으로 꾸짖어

상대가 수동적으로 말을 듣게끔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모든 것을 알 때까지의 기다림도 필요하죠.

보고 듣는 과정 없이 죄를 꾸짖는 것은

그냥 상대가 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꼴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상대를 죄인으로 만들어 자포자기하게 만들면 그것이 남을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죄를 지으면 꾸짖음을

용서를 청하면 용서를

상대를 기다리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의 중심은 하느님이시기에 그 뜻에 맞으면 기다리고

죄를 지으면 그것 아니라고 말해주고 용서를 청하면 받아준다.

이것이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앞장서서 지도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며

그 뜻이 드러날 때 능동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을 기억하며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한미카엘라 📱 (2018/11/12 19:53)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쓰기

📢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목록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 마리아사랑넷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6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