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선교는 내 안에 이루어진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글쓴이 :  바울라님 2018-10-17 19:46:58  ... 조회수(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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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2018.10.15

 

제1독서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갈라티아서  4,22-24.26-27.31─5,1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  11,29-32

 


 

선교는 내 안에 이루어진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바깥을 산책하고 다니는데 어떤 분께서 자연스레 다가오셔서

"예수님 믿으세요~" 그러면서 조그마한 책자를 주셨습니다.

산책하던 중에 어떤 큰 교회가 있던데 그 교회에서 선교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분 같았죠.

저는 그것에 “예 고생하세요~”하고 그냥 받았습니다.

다른 교파이지만 나름 하느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분께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면서 싸움 걸 것도 없고

"하느님 믿어요" 하고서 거부할 것도 없죠.

그런 것 이전에 선교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는 합니다.

비록 개신교 선교사라 할지라도요.

개신교 신자들이 나와서 전단지라도 나누어주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본 분들이면 장난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제가 만약 누군가에게 자존심을 내려놓는 수행을 시킨다면 전단지 알바를 시킬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수없이 무시당하면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내려놓고 봉사하는 일입니까?

이렇게 가볍게 전단지 나누어주는 것부터 보아도 선교는 힘든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데레사 성녀 일명 소화 데레사 성녀는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교의 수호성인이신 데레사 성녀는

타인에게 가서 예수님 믿으라고 한번도 외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봉쇄수녀원인 가르멜 수녀원에서 젊은 나이로 병으로 지새우시다가 돌아가셨으니

활동적인 면에 대해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죠.

그 이유는 성녀께서는 가장 기본적인 선교를 행하셨고

그 선교는 중세 교회의 쇄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선교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선포한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이는 단순히 무언가 업적을 알리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선교는 다름 아닌 하느님께 봉헌된 나 자신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나는 아무리 몸이 병약할지라도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완성되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있던지 상관없이 내가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또 그 사랑을 모든 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선교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에서 하느님 사랑을 순명하는 것이 기반이 되는데

나 자신을 선포하듯 모든 사람을 하느님 섭리 안에서의 하느님의 뜻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모든 뜻을 바로 세우는 것이 선교이죠.

사실 사람이라는 표징이 하느님 사랑의 모든 것을 나타내지만

하느님 사랑에 순명치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더 많은 표징들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대를 비판하시며 순명의 기본인 경청을 다시금 강조하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선교의 수호성인이신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몸이 병약하여 많은 활동들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상당한 약자였죠.

이를 경청하고자 했던 가르멜 수녀원의 장상의 노력과

성녀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교회는 그 조용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며 하느님 안에서 잘 이루어지길 기도하십시오.

또한 듣고 또 들어서 나의 형제가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완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십시오.

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여 하느님의 것을 받은 이에게는

하느님의 눈을 통해 바라보며 하느님의 섭리로 인도할 수 있는 은총을 받습니다.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노는 모습만으로도 선교는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며 수많은 형제들을 보며 즐거워하십시오.

그것이 선교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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