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능한 하느님의 복음

글쓴이 :  바울라님 2018-10-09 22:00:42  ... 조회수(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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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2018.10.8

 

제1독서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 갈라티아서  1,6-12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루카  10,25-37

 


 

무능한 하느님의 복음

 

제가 지나가다가 본 신문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문신을 한 사람은 취직하기 어렵다는 기사였죠.

많은 점에서 바라볼 때 사회에서는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경계하거나 훈계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일반인들이야 불량학생들에게 '위해가 가해질까봐 건들지 않는다' 그런 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생님마저 그들을 피하는 경향들이 많이 생겼죠,

오히려 가만 놔둬도 혼자 공부 잘하는 애들만 챙기고

불량학생이 오거나 예의 없는 아이가 오면 지뢰 밟은 취급을 해버리는 현실입니다.

세상이야 그렇다 치는데

복음마저 그렇게 변하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세상의 법칙에 물 들어서 선포된 복음' 믿으려는 이들이 참으로 많아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걸 믿냐면 그게 편하니까요.

이해도 잘되고 어렵지도 않고 익숙하니까요.

말 그대로 내가 듣기 편한 말이니까 듣는 것입니다.

나한테 편한데 교회가 말하는 것과 맞는 듯이 그럴싸합니다.

그런데 그럴싸하다는 사실로 여러분이 걸려 넘어지면 안 되는 사안들이

요즘에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의 법칙으로 변질된 복음은

진짜로 많은 교부들과 교회학자들, 영성가들의 논조가 모두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편한 게 추가된 것입니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무시하고, 아픈 건 헛된 것이며 나쁜 건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점은 사랑이 없습니다.

다른 민족 즉 세상의 법칙대로

내가 사랑할 사람만 사랑하고, 이해 안 되는 건 무시하며,

아픈 것은 외면하고, 나쁜 것은 배척합니다. 얼마나 편합니까?

내 입맛대로 맞춰주는 복음

그러나 그런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바오로 사도는 못을 박습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복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이 선포하신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들을

그냥 장난이었으니 무시하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침묵의 하느님이 행하시는 인간이 이해 못할 수많은 일들을

하느님께서 헛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그 길 속의 고통을

그냥 지나가는 것이니 없는 것 취급하라고 하실까요?

모든 죄악이 하느님께서 감당 못하시는 것이기에 배척하고 죽이라고 그러셨을까요?

왜곡된 복음의 내용들은 하느님께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진정 그들이 믿는 게 하느님인가 싶기도 하고

대체 그런 신을 왜 믿는 건지도 모를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이 별거 아닌 하느님인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 손으로 즉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이기 때문이죠.

오늘 율법학자의 하느님도 본래 하느님의 영성과 같은 논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는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을 찾습니다.

이 논조를 이용해서 자신이 만든 하느님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 하느님은 자신이 부정해질까봐

초주검이 된 인간을 만지지 못하는 하느님이었고,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사마리아인을 배척하는 하느님이었습니다. 시작하는 논조는 똑같습니다.

사랑이 사라지고 자기 손이 남아있을 뿐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입으로 그 하느님을 무너뜨립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사마리아인이라 부르지 않고 그런 사람이라고 부른 이유는

사마리아인이 선행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인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하느님 눈에는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죽은 시체를 건드는 것이 죄가 아닌 선행이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도 종종 우리 이웃이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앞서 말한 다가가기 힘든 불량한 모습 낯선 모습으로 말이죠.

우리는 그들을 피합니다. 그들이 그르기 때문에 우리는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복음입니까?

사람에게서 나온 복음입니까?

그런 이웃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한 하느님에게서 나온 복음입니까?

우리의 복음을 수호하십시오.

하느님께 온 복음의 기초는 하나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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