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따르고자 하는 의지

글쓴이 :  바울라님 2018-10-03 09:08:46  ... 조회수(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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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2018.10.3

 

제1독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 욥기  9,1-12.14-16

복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  9,57-62

 


 

목표와 불안과 후회보단 따르고자 하는 의지

 

교황님께서 미디어 관련된 이야기를 하실 때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사실 지금의 현실 속에서 가짜 뉴스로 인한 여론이 휘둘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일명 뇌피설 오피설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죠.

뇌피셜, 이것은 신조어입니다.

즉 뇌와 오피설(공식입장)이 합쳐져

뇌 속 뇌세포들끼리의 공식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현실에 증거나 논리 없이 사실인 마냥 선포되는 자기 생각을 뜻하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즉 SNS를 이용하는 이 세대는

다양한 뇌피셜에 중독되어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뇌피설에 휘둘리는 이들은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며 부정적인 것만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들은 현실에서 철저히 부정당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것과 자기 생각에만 집중한 결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뇌피설과 가짜 뉴스 즉 자기 생각에 휘둘리는 3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고정된 이상,

존재치 않는 현재와 대한 불안(미래에 대한 불안),

놓쳐버린 현재에 대한 후회(과거에 대한 후회)

이 세 가지는 자신을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고립시키는데 충분한 요인을 제공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보다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앞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저 세 가지는 살아가는데 필요하긴 합니다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와 현재를 살아가는 것과 부딪힌다면

기꺼이 쓰레기로 여기고 버려야 할 사안들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

 

예수님께 다가온 세 제자의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있는 고정된 이상을 흔드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보호와 섬김을 받으며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는 온실 속 화초의 길이 아니며

현실의 모든 것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강인한 들짐승의 삶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말하는 고정된 이상인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은

하느님을 따르는 길 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긴 합니다.

모든 이가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야한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것이 상대로 하여금 그런 환경에 의존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면

기꺼이 거두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도

사랑하며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있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안'을 지적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 우위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미래를 우위에 두고서

진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죽은 이들의 세상, 사실상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이죠.

우리가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장사를 지내면 그 사람이 더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빠져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현실보다

그런 불안을 해소하려는 태도를 우선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죽은 이들의 것,

그것은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너는 현실에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뇌피설 가짜뉴스를 말하는 이들은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알아서 살도록 하고

하느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현실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있는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집착과 후회'를 지적하십니다.

이 말씀은 실현되지 않은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그 다음을 생각하라는 의미' 입니다.

떠난다는 선택을 스스로 하고서

당장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음에 후회하고

그것을 수정하려 집착합니다.

누군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누가 이랬더라면 현실이 이러지 않았을텐데”

“내가 그랬더라면 지금 이렇지 않을텐데”하고서

그 과거를 고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과거를 현실에서 고치면 좋은데

과거로 돌아가서 고치려는  타임머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벌인 일은 받아들여 책임을 지고

그 다음에 후회되지 않을 행동을 하도록 현실에서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갈 방법을 생각해야지

과거를 고칠 방법에 갇혀 살아가면 그대로 고립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실을 나아가야지 과거 자체를 고치고자 하는 집착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분명 희망을 세우는 목표점, 미래에 대한 대비, 과거에 대한 후회

모두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것들이지

내 자신에 갇혀 살기 위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여러분들이 현재를 살아가기에 방해되는 요소이며

하느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요소라면 마땅히 버려야할 요소입니다.

현재에서 하느님을 따르십시오.

수많은 감정들 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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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10/03 12: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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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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