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알버트를 기억합시다.

바울라 2018/09/28 오전 08:49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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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금요일]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2018.9.28

 

제1독서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코헬렛  3,1-11

복음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  9,18-22

 


 

아기 알버트를 기억합시다.

 

파블로프의 개라는 실험을 알고 있나요?

한 개한테 종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그 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종소리와 동시에 밥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밥이 나오는 줄 알고 침을 흘렸다는 그런 실험입니다.

동물들에게 그런 조건반사적인 결과들은 종종 보입니다.

저희 집에 물고기가 밥을 줄 때 먹이통으로 어항 위쪽을 쳤더니

위쪽만 두드려도 위로 몰려드는 그런 현상도 보입니다.

 

그럼 이 분야에 대해 좀 더 들어가 보죠.

아기 알버트 실험이라고 아십니까?

한 심리학자가 파블로프의 개에 대한 반응이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이 될 것인가 궁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버트의 어머니에게 큰 돈을 주고서 실험을 시작했죠.

우선 아기와 털옷을 같이 두었다고 합니다.

아기가 털옷을 만질 때마다 굉음이 나게끔 만들었고

아기가 털옷을 만질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파블로프의 개 이상이었습니다.

털옷뿐만 아니라 털 자체에 두려움을 느껴 털옷뿐만 아니라

털 많은 동물이 다가가도 크게 울며 도망쳤다고 합니다.

심리학계에서는 참으로 위대한 실험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 알버트는 뇌질환으로 죽었습니다. 알버트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한 가지 알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이 있습니다.

어떤 과거에 매인 인간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코헬렛서는 과거가 수많은 모습으로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오늘 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파블로프의 개'나 '아기 알버트'와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죽여 갑니다.

어떤 겉모습의 인과관계라는 과거에 매여서 그것이 당연한 듯이 살아갑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긍정적인 과거에 매이든, 아기 알버트처럼 부정적 과거에 매이든

인간으로서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면 호의로 돌아왔다고 호의가 당연해지며 감사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과거에 어떤 장애물이 있으면 불가능했다고

언제나 불가능한 과거에 매여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코헬렛이 말한바와 같이 인간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듯이

시간에 따라 물 흐르듯 지나가고 또 제때에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나 코헬렛이 말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저 때가 어떠한 이유로든 고정한 사람은

그곳에 멈추게 되며 하느님의 시간이 시작에서 종말로 흘러가도

자신만은 멈춰서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보면 과거의 겉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을 과거에 고정합니다.

그것 자체로 자신의 눈과 귀를 죽여 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과거에 눈과 귀가 매여 있으니 말이죠.

바로 예수님을 보고 세례자 요한 엘리야라 표현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하죠.

그럼 역사학자들의 연구는 다 무의미하고 죽어가는 연구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거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자주 쓰는 말 “역사를 거울삼다.” 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본질을 바라봅니다.

본질을 바라보기 위한 연구이기에 진실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코헬렛이 말하는 “시간 의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겉모습은 끝없이 변한다는 것은 그들은 압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의 본질의 인과관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이유는

겉모습을 통해 좋은 건 따라하고 나쁜 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통해 현실을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과거의 전통을 통해 듣고 배웠던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본질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겉모습이 아닌 과거의 본질을 통해 현실에서 나아간 이들은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과거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저 겉모습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면

지금의 문화 관습과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라하고

겉모습이 부정적이면 배척하고 봅니까?

아니면 본질을 깨우치고 나의 현실에서 나에게 맞게 본받거나 경계합니까?

역사를 거울삼으십시오.

역사가 보여주는 본질을 거울삼아 현실을 살아가십시오.

역사의 본질을 바라보십시오.

그 속을 바라보면 하느님께서는 이미 많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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