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누가 더 사랑하는가 보다 누가 사랑을 못하고 있는가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9-21 08:32:10   ... 조회수(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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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2018.9.21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 에페소서  4,1-7.11-13

복음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  9,9-13

 


 

누가 더 사랑하는가 보다 누가 사랑을 못하고 있는가

 

여러분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교회 내에서 몇 위라 생각하십니까?

너무 범위가 넓은가요?

그럼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서 몇 위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여러분은 무어라 대답하셨습니까?

순위가 낮습니까? 아니면 순위가 높습니까?

한 번 맞춰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원하는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낮은 순위를 통해 보이는 겸손일까요?

아니면 높은 순위로 보이는 열정의 사랑일까요?

정답은 이 질문 자체에 화를 내는 것이 정답입니다.

사랑에 계급과 등급이 매겨지는 상황을 화내는 것이 정답입니다.

'내가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 '내가 누구보다 못 사랑한다', 이런 말로

사랑의 본질이 깨어지는 것에 분노해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은 누가 더 나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받은 사랑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경쟁사회라고 불립니다.

경쟁을 통해 서로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가치들이 높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은 좋다고 합니다.

다만 선의의 경쟁은 경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선의의 경쟁은

자신의 것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하는 와중에 만나는 나와 타인의 지점입니다

서로의 노력이 만나며

서로 깎여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며 자신의 것에 더욱 충실히 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러한 본질에 관심은 없고

보이는 겉모습인 경쟁에 관심을 갖습니다.

학문은 연구하는 것이 아닌 누가 더 많이 아는 가로 변질되었듯이

수많은 가치들이 변해갑니다.

우리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가치보다 대중의 원하는 가치가 중시되며

나는 사라지고 남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사랑도 내가 더 사랑한다 내가 더 이 사람 마음에 듣다 이야기하며

저 사람은 나보다 덜 사랑한다 그렇게 교만에 빠집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는 누가 더 사랑했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사랑을 못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십니다.

누가 하느님께서 주신 가치를 빛내지 못하고 있는가?

심판의 눈이 아닌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물론 의사가 환자의 병을 명확히 알기 위해 냉정한 식별도 필요합니다.

다만 ‘넌 병이 나았어’로 그치지 않고

병을 고치는 법을 생각하는 것이 의사입니다.

우리는 경쟁에 빠져 살다보니 병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것에만 능숙합니다.

상대를 병자로 만들어 낮추면 내가 높아지기 좋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사랑하는가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왜 못 사랑하는지? 를 살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오늘날의 경쟁은 커다란 우상 숭배 행위입니다.

대중이란 우상을 섬기는 죄이죠.

경쟁 속에서 우리는 좋은 것을 정해놓고

좋은 것에 해당되는 것만 취하고

나머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가치들은 버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가치들로 하여금

빛나서 당신의 영광을 알리라 하셨지만 빛나기 전에 묻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색을 잃어가며 우상의 색으로 물들여져 가는 이 세대 속에서

우리는 그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가치를 빛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살펴봅시다.

우상이 원하는 것에 해당되지 못했다고

자신의 가치나 남의 가치를 헛되게 보는 것은 아닙니까?

우상에 휘둘려 살다보니 나의 가치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이는 아닙니까?

그러고서 1탈렌트 받는 종처럼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으면서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아닙니까?

우리는 1탈렌트일지라도 받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상의 말대로 내 건 필요 없으니 버립니까?

하느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가치를 빛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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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9/22 1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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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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