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주님의 신비를 현실로 가져와라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1-10 18:27:3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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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2018.12.27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  1,1-4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  20,2-8

 


 

주님의 신비를 현실로 가져와라

 

요한 사도를 본다면 참 교회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참으로 많은 부분이 교회 같은 위치를 담당한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어제 어둠 밤과 예수님으로 인해 빛나는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참으로 빛나는 교회를 지키는 그런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비 신학자적인 면모가 느껴지기도 하면서

교회가 가야할 길을 현실적으로 잘 알려주는 스승 같은 모습으로 있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이 교회 밖으로 파견 가는 이의 모습이라면

요한 성인은 교회 안에서 빛으로 안내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예수님 제자 1세대로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사람이기도 하고요.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요한이 교회의 스승 같은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이유는

뭔가 요한 묵시록은 말할 것도 없고 요한서를 보면 신비 신학적으로 이야기하긴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상당히 크게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이들이 신비신학과 현실의 논리나 상황은 양립할 수 없다고 하며

신비신학을 거짓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그게 됐습니다.

신비신학이 정말 상대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도록 이야기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보면 성직자 수도자들이 아니더라도

평신도 사제직과 같이 평신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려면

신비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체험하고 알고 있어야합니다.

그러지 않다면 지도자 자리에 있기가 힘든 상황이 많이 닥칩니다.

하느님께서 있어야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죠.

이제 자신의 행동에 따라 그 신비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가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복음서가 아닌 이상 자신의 체험을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는 사실을 전할 뿐

무언가 예수님과 다니면서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들었고 하는 이야기는 잘 전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세히 봐야합니다.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초대하는 이야기입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하느님의 뜻으로 어떻게 초대할지

그것에 언제나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나에게 다가온 상대, 하느님께서 보내신 양떼들이 어떤 이들인가 어떤 상황인가를

더욱더 보고서 그들 상황에 맞는 신비로 다가가는 법을 배워갔죠.

내 이야기를 믿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닌 그들이 하느님을 만나 뵙기를 원한 것입니다.

나를 따르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 각자가 하느님을 따르기를 원한 것입니다.

나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닌 그들 자신이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신이 체험을 하였어도 형제가 체험하도록 기다리는 이가 되는 것이죠.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교회의 지도자는 상대가 보고 들은 것과 그것을 통해 느낀 것

그리고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상태에서 자신이 아닌 최선의 선택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선택,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선택을 알려줍니다.

일부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이를 간과하여

그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느낀 것 판단한 것만을 이야기합니다.

신비를 이야기해도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이것이니 너는 따라야한다 이런 입장이니

그 말에 이해도 없고 논리도 없죠.

그러니 신앙, 신비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 밖의 적대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지도자에게까지 말이죠.

그렇게 서로 신앙이 어리석은 것이라며 증명하고 다닙니다.

인간끼리 신앙을 이야기하면 어리석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기억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 기억하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테파노 성인과 같이 세상에 나가 예수님의 뜻을 실천할 때도 있지만

교회에 빛을 받으러 오는 신자들의 지도를 맡을 때도 있습니다.

그 때 나의 이야기를 자제하십시오.

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최선의 선택을 알려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내 이야기 아니라 상대의 입장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해야 현실적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세상의 법칙에 집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의 눈과 귀를 얼마나 이해하려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주님의 뜻이 이룰 수 있도록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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