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정을 받아들이는 것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12-17 23:03:12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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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간 월요일]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2018.12.17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  49.1-2.8-10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  1,1-17

 


 

부정을 받아들이는 것

 

삶을 살아가다보면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완벽이 요청되는 일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학업에서부터 학생들에게 미래를 위한 완벽을 요구하고

학생들에게 준 목표를 달성하여도 이어서 완벽을 요구하는 삶이 이어져 있습니다.

삶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완벽을 요구하는 삶에서

지쳐서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힘들었다고 하는 이들도

결국에는 다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이에게 완벽을 요구합니다.

그 길만이 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뿐이죠.

그리고 완벽을 벗어나려 하는 이들을 어리석은 이들이라고 칭합니다.

이에 대해 이런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세상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다.

그런데 완벽만이 하느님의 뜻일까?

완벽만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왜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할까?

오늘 복음은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도 하느님의 섭리임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마저도 받아들이시고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혜 만물을 힘차고 아름답게 가꾸시는 분,

어서 오소서. 저희에게 슬기의 길을 가르치소서.

 

오늘 복음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이스라엘이 추구하던 완벽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이름들이 보입니다.

이방인, 혹은 간음으로 혼인 된 여인,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던 악인이며 올바르지 않은 관계들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신 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부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는 부정적인 것들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은 그대로 받아들이시며

그 시대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언제나 알려주시곤 하셨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을 배척하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들은 늘 받아들이셨습니다.

예를 들어 죄를 지었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

용서의 유무를 떠나서 말이죠.

용서받는 것도 죄가 사라지고 죄의 대가도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용서가 있더라도 죄에 대한 대가는 이루어집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이며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길입니다.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예수님의 지파인 유다지파는 자기가 잡은 짐승을 먹는다고 표현됩니다.

자신이 잡은 짐승은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발생한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 여기고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여기며

죄를 짓더라도 그로 인해 다가오는 결과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를 누가 흔들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이에게 하느님께서는 더욱더 많은 것을 베푸시며

완덕을 향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진 것들을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우리 앞에 주어진 상황에서의 최선,

그것은 반드시 세상이 요구하는 완벽과 같은 길이 아닙니다.

내 안에 주어진 것들이 각자 다르며 같은 의무에도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살피십시오.

내 안에 담긴 특성들이 무엇인지,

그 후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무엇인지,

필요하다면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내가 잘 수행할 수 있는가를 다시 고려해보고

반대로 의무를 수행하고 싶을 때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주어진 방법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정말 최선인가? 고민해보십시오.

단순히 주어진 방법론을 따르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닙니다.

주어진 방법론도 하느님의 뜻에 맞는 길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안에서 각자의 길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우리 앞의 시대의 정의와 평화를 꽃피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앞에 지금 주어진 것들은 무엇입니까?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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