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누구든지 엘리야 예언자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12-17 22:42:0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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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토요일]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2018.12.15

 

제1독서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 집회서  48,1-4.9-11

복음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마태오  17,10-13

 


 

누구든지 엘리야 예언자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와야 한다.

이스라엘 메시아사상에서 엘리야의 존재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많은 종말론적 이단들의 교주들은 자신이 그 엘리야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그러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과 엘리야 예언자가 오는 것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 예언자를 불로서 표현합니다.

불이라는 것을 보면 다가가기 전에 겉에서 보면 따뜻하고 멋있어보이지만

정작 다가가면 다가간 이에게 좋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의 표현도 그러합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 보냈다.

 

보면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근데 이걸 찬양합니다.

이단이든 진실한 가톨릭 신앙인이든 이것을 환영하며 칭송합니다.

왜 칭송할까요?

엘리야 예언자의 행동은 다름 아닌

하느님을 향한 모든 이를 위한 길이었기 때문에 칭송한 것이죠.

엘리야 예언자의 불은 많은 이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밝히고

자신의 것을 깎아 내는 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단의 견해와 진실한 신앙인 사이에서 이야기가 갈립니다.

이단은 자신들의 방해물들을 죽이는 불로 생각하고

신앙인은 자신을 주님께 맞는 이로 만들어 가는 불로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사실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을 만난 이라면 누구든 그러한 자리로 오를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대단한 것은 한 평생 그런 위치에서 주님의 뜻에 맞는 이로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다른 의미로 누구든지 그러했던 순간은 한 번씩 있다는 겁니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한테 엘리야로서 다가온 이가 참으로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인지하고 있던 말던 떠나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엘리야 예언자와 같은 위치로 보낸 이들도 참 많습니다. 그

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그 이야기를 무시하고 불편해하며 피하기 바쁩니다.

그것을 모아서 간단한 단어로 '모른다.' 라는 단어로 이야기됩니다.

세례자 요한도 결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나에게 온 엘리야 예언자를 맞이하지 못하고 나의 것을 지켰다면

나에게 오는 예수님도 그렇게 대해질 뿐입니다.

단순히 주님을 자기 뜻을 세우는 방편으로 이야기하는 것 뿐입니다.

내가 불편하면 내치고 내가 필요하면 찾는 존재가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누구든지 어떤 순간에는 엘리야 예언자와 같은 이가 되고

어떤 순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주변 환경들이 나를 기분 좋게 하고 옳은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순간

우리는 엘리야 예언자가 쉽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약간의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어느 순간 약한 사람이 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단순히 그 시대의 악한 이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의 대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내 앞에 장애물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완벽한 환경을 통해서 엘리야 예언자처럼 하느님 뜻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경우 엘리야만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신도 나약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친 그는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그 자체로 강인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가 나 자체로서 강인한 이가 되어 살아갑니다.

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십시오.

그러면 그 자체로 나 자신의 불필요한 것은 불에 태워질 것이며

내 안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불에 의해 보존될 것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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