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가난한 이가 누굴까요?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11-18 10:41:4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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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2018.11.18

 

제1독서  <그 때에 네 백성은 구원을 받으리라.>

▥ 다니엘  12,1-3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  10,11-14.18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 마르코  13,24-32

 


 

가난한 이가 누굴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가난한 이의 날이기에 오늘은 가난과 자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독서와 복음이 자선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

또한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이러한 독서와 복음 말씀을 보면서 생각난 예수님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루카 19, 26)

 

가난한 이들은 누구일까요?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난한 이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성적인 측면으로 보면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어떠한 재물이든 즉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영성적이든

어떠한 재물도 하느님께 봉헌되지 않은 재물은

가치가 없거나 자신한테 굉장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됩니다.

너무나 물질적인 시점에 빠져서

이 봉헌이 봉헌금 교무금 많이 내라는 소리로 듣는

교회를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무신론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신자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 육체적 자산이든, 물질적 자산이든, 정신적 자산이든, 재능과 같은 자산이든,

영적인 자산이든 하느님께 봉헌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각자 다른 자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고 윤택하게 해주는 자산도 있고

아니면 내가 모르기 때문에 먼지 쌓인 채 묻혀 있는 자산도 있습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며 하나하나 하느님의 뜻,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께 봉헌한 자산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 사용되는 자산이 하느님께 봉헌된 자산이죠.

하느님께 자신의 자산을 최대한 바친 이일수록

그리스도를 만나 하느님 안에서 구원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허무와 공허 속에서 떠돌게 됩니다.

사실 내가 구원되었는가 아니면 공허 속에 떠돌아 다니는지 자신이 가장 잘 알게 됩니다.

이는 이미 사도들의 시대에 일어난 일이며 지금도 그러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이 봉헌을 어떻게 하는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잘 알려주셨습니다.

우리의 방식으로는 하나하나 조금씩 바칩니다.

우리가 준비가 되는 것부터 해서 하나하나 봉헌합니다.

이 방식이 사제의 방식입니다.

다만 이는 우리가 온전히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좋은 봉헌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좁은 문을 지나가는데 계속 티끌이 걸려서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느님께 봉헌 하지 못하겠는 것은 버려야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욕심으로 잡고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봉헌하지 못한 대부분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것 보다는

욕심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 큽니다.

그렇기에 대대로 알려진 사제를 통한 봉헌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데에 도움은 되지만

본질적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봉헌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하며 살아가신 그 삶을 바라봅시다.

탄생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성전에 봉헌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 시간을 봉헌하시며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명하시며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관계를 봉헌하고

세례를 통하여 당신의 자리를 하느님께 봉헌하시고

자신의 욕심을 봉헌하시어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시고

당신의 말과 행동을 하느님께 봉헌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합니다.

또한 당신과 맺어진 관계들을 봉헌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사도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시어 돌아가시고 부활함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빛내셨습니다.

그의 모든 것을 봉헌하신 대사제의 삶이며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할 스승의 삶입니다.

사도바오로께서는 이러한 봉헌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어떤 탈렌트를 가지고 있을까요?

내 모든 것을 되돌아보며 내가 가진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훌륭하다 생각하여 독차지하고 싶은 탈렌트가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탈렌트가 있을 수 있으며

너무 부끄러워 숨겨둔 탈렌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되돌아보십시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모든 탈렌트를 서로 사랑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그 봉헌을 통해서 사람의 아들의 향기를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가는 길에 사랑이 꽃피며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사귀가 피어난 것을 보며

생명의 시기가 온 것을 알 듯이

스스로의 생명을 하느님 안에서 빛내며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하느님의 자녀, 사람의 아들이 되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네이버 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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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11/18 13: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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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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