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2주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2019.3.17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
▥ 창세기 15,5-12.17-18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 필리피서 3,17―4,1
복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 루카 9,28ㄴ-36
변하였지만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했을까?
예수님은 변하셨지만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에 다른 이들을 비유로 들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서전을 쓴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변한 것은 언제일까요?
겉모습이 변할 때는 자신의 직책이 변했을 때이죠.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그렇게 오른 때이며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승진했을 때이며
공동체를 이동했을 때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공동적인 것은 년도가 바뀌었을 때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 때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그 자서전들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사실 나 자신의 변할 때가 그 때는 아닙니다.
대부분 일상 속에 살아가는 중에 자신이 변하죠.
무언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 지나가다가 들은 말을 통해서 깨닫고 변하게 됩니다.
잘 보십시오. 겉모습이 변했을 때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는 변하지 않았지만 변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변하셨지만 예수님이었습니다. 새로운 누군가가 아니었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예수님은 변하기 전이나 후나, 또 돌아온 후나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아들이셨습니다.
이를 잘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독서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변모하신 예수님의 맞추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변하는 모습이 아닌
아브람이 변하기 전에도 하느님을 따르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람은 하느님을 믿었고 그에게 닥친 고난 중에도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려는 아브람의 의로움이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게 하였고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나 지금의 작은 아브람이나 같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사실 우리에게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과 하느님을 배척하는 길이죠.
하느님을 따르는 길은 작은 것 하나라도 하느님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느님을 배척하는 길을 작은 것 하나라도 하느님의 것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배척의 길 끝에 놓인 것은 하느님의 죽음이었고
따르는 길의 끝에 놓인 것은 따른 이의 부활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사건이 일러주는 중 하나는 따른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죽음과 모든 것의 부활 여러분은 어떤 결과를 원하시나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많은 이들이 어떤 기점으로 변하고자 합니다.
무언가 큰 기준이 생길 때 변하고자 합니다.
대표적으로 외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 말이죠.
사람 스스로도 변한 시기라 생각하고요. 그러나 변한 것은 없습니다.
겉모습이 변했고 주어진 직무가 다를 뿐 자기 자신은 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기점이 아닌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이미 응답한 이든, 응답을 하지 않은 이든,
부르심이 들리는 이,든 들리지 않는 이든 마찬가지로 말이죠.
부르심의 매 순간에 응답함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게 되며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하느님을 따르는 이가 되죠.
그러나 큰 기점, 자신의 기준에 빠진 이들은 그 응답을 놓치게 됩니다.
기점에서 벗어난 것에서는 잠에 빠져들고 말죠.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형제 여러분!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그 본질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따르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직무나 위치가 변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떠한 겉모습도 헛되게 됩니다.
형제 여러분 매 순간 하느님께 응답하십시오.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십시오.
하느님을 받아들이고자 하십시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없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닌, 내가 정한 기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 집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에 마찬가지로
인간은 변하였지만 변치 않고
변치 않았지만 변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진정 변해야할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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