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는 달고 뿌리는 쓰다

바울라 2019/05/13 21:35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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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토요일]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2019.5.11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사도행전  9,31-42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  6,60ㄴ-69

 


 

열매는 달고 뿌리는 쓰다

 

신앙에는 3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긍정신학적인 신앙, 감각신학적인 신앙, 부정신학적인 신앙이 있습니다.

긍정신학적인 신앙은

하느님에 대해 개념을 자신 안에 확립해가며 자신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충실하게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신학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모습인 감각신학적인 모습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느끼는 것들을 통해 신앙을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충실하게 걸은 사람들은 본당에서 보면 ‘저는 일자무식이지만 하느님만을 믿습니다.’하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쉽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어떠한 개념 없이 그저 하느님과의 친교로서 신앙생활을 이어온 것이죠.

마지막으로 부정신학적인 신앙이 있습니다.

자신의 개념들이나 확신들을 부정해나가면서

자신이 하느님께 쳐놓은 울타리를 부수면서 하느님을 온전히 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비가들 관상기도를 가르쳐왔던 성인들이 대표적인 신앙인들입니다.

이 세 가지 신앙에서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자세는

하느님을 추구하고 알고 싶어 하는 자세입니다.

열매를 보고서 그 뿌리를 찾는 이들의 모습이 기본적인 자세로서 요구됩니다.

이 단계를 보통은 초보자 단계라 이야기합니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하지만 이 초보자 단계도 도달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암담한 이야기였습니다.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례 받지 못한 예비신자가 지닐 신앙을 지니고

거기에 고착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말이죠.

오늘 독서에서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에서는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예비신자 단계,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의 단계는 무엇일까요?

열매에 감탄하는 이들입니다.

열매를 원하는 이들이죠.

먼저 신앙한 이들은 단순히 열매를 내어주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열매를 보여주면서 그 뿌리를 향한 가르침을 내어줍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격려로서 그 수가 늘어납니다.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예비신자들은 열매에 관심을 갖고서 교회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모세가 처음 소명을 받을 때

불타는 떨기나무라는 신비한 현상에 관심을 갖고 찾아가는 것과 같이 말이죠.

하지만 이 열매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명이 되기도 하며 죽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것이 집착이 되고, 자랑스러운 것이 되어간다면 문제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열매를 통해 원죄가 들어왔듯이

우리가 맺는 열매도 마찬가지로 그럴 수 있습니다.

열매를 먹는 것에만 관심 있는 이들,

열매를 맺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

열매를 맺은 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아 교만 속에 살아가는 이들,

모두 신앙에서 기본도 되지 않고 무너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열매를 먹는 것에만 관심 있는 이들 단순히 교회에서의 이득만 찾는 이들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에만 관심 갖는 이들,

하느님의 업적을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짝퉁 신앙입니다.

자신의 열매에 교만을 가지고서 스스로 나팔을 부는 이들,

하느님에는 관심 없이 열매를 통한 자신의 명예를 중시하는 이들입니다.

어떤 신학의 모습으로 가더라도 열매에 집착함으로서 그 신앙이 타락하게 됩니다.

긍정신학적인 신앙은 하느님과 관계없이

단순히 신학에 대한 암기로 망가진 신학을 정립합니다.

열매를 맺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신학적인 신앙은 기복신앙이 됩니다.

열매를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신학적인 신앙을 지닌 신비가도 초현실적인 체험에 집착함으로서 타락합니다.

자신이 선택받은 이라고 높이는 영지주의 이단이 됩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신학자들, 많은 신비가들은 

초현실적 체험을 그냥 자연스럽게 두라고 이야기합니다.

열매에 집착함으로서 영혼에 끼치는 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열매는 달콤합니다. 그러나 뿌리는 씁니다.

뿌리로부터 열매를 맺는 과정은 고통의 십자가길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마름의 길입니다.

열매에는 기뻐하다가 뿌리를 만났을 때 돌아서는 이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기복신앙을 지닌 이들 열매를 받지 못할 것이라 말하면 분노합니다.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에만 관심 있는 이들,

신학적인 반론을 하면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스스로 나팔을 부는 이들,

교회가 침묵을 지시했을 때 순명치 못하고 오히려 반항합니다.

이들이 받아들이는 열매는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여

자신이 함께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뿌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모습입니까?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던

제시된 3가지가 아닌 3중 무언가 섞인 형태로 나아가던

또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던 그것은 하느님께서 여러분께 섭리하실 일이니

무어라 할 바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무어라 지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는 확실히 맺으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가지고 자신의 관계를 증명하지 마십시오.

열매를 집착하는 이는 하느님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이들입니다.

뿌리의 관리를 확실히 하십시오.

뿌리의 길은 씁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명확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베드로의 열매가 어디서 왔는가 기억하고 끊임없이 찾으십시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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