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019.5.6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 6,8-15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나를 봉헌하는 고생을 대신할 것을 찾는 인간
오늘 복음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열심히 예수님을 찾습니다.
앉아서 예수님이 오시길 기다리면서 동시에 예수님이 안 오신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을 직접 찾아 나섭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커다란 마음을 품고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예수님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제가 비주얼 바이블이라 하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영상을 봤는데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웃으며 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웃는 모습이 뭔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그런 웃음으로 이들을 맞이하시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들의 고생을 덜해줄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실 때 노동을 주십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얻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해서 결실을 맺으며 살아가야 했죠.
이들에게 예수님은 이러한 고생을 안 하게 해줄 사람,
나의 고생을 대신 해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하느님 관계 안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 생기는 고생을
대신해서 무언가를 찾고는 합니다.
무언가 지름길이나 덜 고생인 길로 나아가길 바라죠.
많은 이들이 고생하는 길을 피해서 간단하게 먹고 살 길만 찾는 것과 같이 말이죠.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저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하고 계십니까?
우리 삶을 내려놓음으로서 받아들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실감하고 있나요?
그런데 참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 안에서
내 것을 모두 내려놓는 것 대신할 것을 찾곤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던가,
이적을 일으킨다던가,
재물을 나눈다던가 ,
즐거운 것을 찾던지,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는 것,
선행을 많이 하던지 등 대신 할 것을 찾고서 이를 행했다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루었다 자신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한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 대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중시했죠.
그러나 이 결과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아닌
모세를 따르는 공동체가 되어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이야기하고
자세한 이야기 안에서는 모세와 관습을 무너뜨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이 않은지 되돌아보아야합니다.
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 대신하는 수많은 기도나 선행은 헛되며
오히려 마귀의 계략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께 나 자신을 모두 바침으로서 이어지는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하며
우리가 행하는 선행은 그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열매입니다.
나 대신에 무엇을 희생시키려 찾고 있습니까?
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십시오.
하느님께 돌아가십시오.
피조물의 무언가를 통한 하느님의 관계가 아닌
여러분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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